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일수록 투자자의 이해 가능성을 고려해 금융회사가 위험요소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한 판결이 나왔다.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일수록 투자자의 이해 가능성을 고려해 금융회사가 위험요소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법원의 입장을 재확인한 판결이 나왔다. 연합뉴스
서울남부지법 민사12부(재판장 박정길 부장판사)는 7월 23일 중소제조기업 K 사와 F 사가 KB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 반환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선고했다(2022가합110651).
[사실관계]
K 사와 F 사가 매수한 상품은 KB증권이 판매한 특정금전신탁상품인 'KB able DLS'였다. 파생결합상품(Derivative Linked Securities, DLS)은 주가·이자율·환율·실물자산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그 변동에 따라 사전에 정한 방법대로 이익 또는 손실이 결정되는 금융투자상품을 말한다.
이 사건 상품은 KB증권의 DLS를 거쳐 NH투자증권, OPAL 펀드와 ATFF를 연결하는 다층적 구조를 통해 무역금융대출채권에 간접투자되는 것이었다. 해외 무역금융 대출채권의 성과가 좋으면 수익이 발생하지만, 대출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금 회수가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국제 무역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무역금융대출의 회수가 지연·부실화됐고, 기초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DLS 만기상환금이 크게 줄어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K 사와 F 사는 "신탁계약이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이므로 취소되었고, 따라서 피고는 받은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면서 "KB증권이 상품의 구조와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KB증권은 "원고들은 법인 투자자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력이 충분했고, 제안서와 자료를 통해 위험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쟁점]
원고들이 KB증권과 체결한 신탁계약이 착오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될 수 있어 피고가 받은 투자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하는지, KB증권이 복잡한 구조의 DLS 상품에 대해 원금 전액 손실 가능성을 포함한 핵심 위험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그리고 K 사와 F 사가 스스로 위험을 인지·판단할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
[법원 판단]
법원은 KB증권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KB증권이 K 사에게 약 5억2986만 원을, F 사에게는 약 3억434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K 사와 F 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일부 인정해 배상액을 각각 30%와 20% 감액했다.
법원은 피고가 원고들의 투자원금을 원고들과의 합의 내용에 따라 DLS 인수에 사용·지출한 사실을 인정하며 부당이득반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의의무를 위반해 손해가 발생하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KB증권이 투자자들에게 보험금 지급요건과 면책사유, 지급 절차 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상품설명서에 "무역금융채권 부도 시에도 보험금이나 재매입으로 원금이 보장되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표현"을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고 스스로도 당시 대출채권의 원금이 대부분 보장되는 것으로 오인했고, 투자자들이 위험을 제대로 인식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밝혔다.
다만 법원은 자본시장법이 투자권유 단계에서 일반투자자 보호를 특히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고 봤다. K사는 코스닥에 상장된 주권상장법인으로, 자본시장법상 전문투자자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법인 투자자로서 일정한 금융지식과 자료 접근성을 갖추고 있었고, 금융투자상품의 본질상 불확정적 위험이 수반되는 점과 자기책임 원칙을 고려해, 피고의 책임을 손해액의 각각 70%, 80%로 제한했다.
[대리인 의견]
K 사와 F 사를 대리한 이성우(사법연수원 35기)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재판부가 DLS 발행사인 NH투자증권로부터 유발된 피고의 대출채권 원금 보장과 관련한 착오가 투자자인 원고들의 착오와 사실상 공통된다고 본 점이 주목된다"며 "NH투자증권뿐 아니라 금융소비자와 직접 거래관계에 있는 KB증권에 대해서도 보다 엄격한 책임을 부과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조한주 법률신문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