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반복되는 슬픔, 더 이상 오지 않으려면

탄핵 이끈 시민의 저항 속에서
‘적극적 MZ세대’ 출현 큰 위로
권력구조 바꿔야 악순환 끊어

시대착오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적극적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출현이었다. 여의도 국회 앞을 메운 젊은 세대들은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 ‘촛불’을 대체했으며 무거운 시위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바꿔놓았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과 춤추며 어우러진 K-팝 떼창은 앞으로 그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간절한 함성이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며 즉각적이고 분명한 자기표현에 익숙한 청년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것이 이번 계엄 사태의 빛이었다면 그 뒤에는 언제든지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낡은 정치체제의 그늘이 있다. ‘12·3 계엄’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나라, K-팝·K-드라마 등 K-문화의 국민이라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 얼마나 허술한 기초위에 서 있었는지를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후 두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첫째는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의문이었고, 둘째는 ‘나라는 선진국인데 대통령은 왜 후진적일까’라는 성찰이었다. 이번 계엄이 치명적이고 심각한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 여부를 떠나 대통령 한 사람의 독단으로 국민의 자유와 일상을 지킬 수 있는 헌법과 민주주의 시스템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사태의 직접 원인이 "극우 유튜버가 강변하는 부정선거론을 믿은 대통령의 확증편향" "감정적, 충동적이며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의 성정"을 떼놓으면 설명하기 힘들다는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은 우리 권력 구조가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 사태를 촉발한 대통령 개인 성향에 대한 문제를 넘어 현 권력 구조는 대통령의 성격이나 기질에 의해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이 한순간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수습 기간이 따로 없고 없어야만 하는 책임이 매우 막중한 직종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가 통치권자가 되어서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며 "이런 실수 좀 봐주세요"라고 한다면, 국가를 망가트리는 일이며 국민을 죽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종인은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대통령의 무지는 죄가 된다"고 했다. 국정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결국 잘못하게 되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죄가 된다는 것이다. 권력은 잠시 위임되는 것이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만고불변의 권력인 것처럼 허세를 부리다 국민의 심판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라고 지적한다.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 나라 전체를 뒤집어놓는 이 제도가 실패한 제도라는 것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대통령 3명이 감옥에 가고, 1명은 극단적 선택, 3명은 탄핵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는가. 정치체제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차기, 그리고 차차기에 반복될 수 있다.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바꿔서 제대로 된 정치인을 선출하고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에서 극단이 득세하는 정치, 그래서 상대편이 싫어서 차악을 선택해 민주적 소양이 없는 자가 대통령이 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것이 낡은 정치체제의 그늘에서 반복되는 슬픔을 끊고 미래세대가 만나야 할 세계, 새로운 공화국이다.

조영철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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