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환기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드는 강달러 현상이 지속 중이다. 외환당국의 개입 가능성으로 추가적인 급등이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강달러가 장기간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대비 4.4원 오른 1399.1원에 개장했다. 이날 새벽 2시 종가는 1401.0원이었다.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7일 이후 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오전 9시43분 현재는 1400.5원에 거래 중이다.
환율이 치솟은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세계적으로 달러 강세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세계적으로 통상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에 달러는 연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으로 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매기고 중국산 수입품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공화당이 백악관은 물론, 의회의 상·하원을 장악하는 레드스윕 현상까지 나타나면서 트럼프의 공약이 현실화할 우려도 커졌다.
세계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105.7까지 오르면서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7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음에도 이례적인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Fed의 정책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 결과 레드스윕이 유력해지면서 달러인덱스가 105를 상회하는 등 달러 강세 모멘텀이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은행들도 원·달러 환율 전망치 상단을 높이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은 이달 원·달러 환율이 최고 142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으며,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상단을 1410원으로 봤다. 지난달만 해도 전망치 상단이 1340원 정도였는데 트럼프 당선 이후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시장에서는 달러 강세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이번 대선 결과는 (미국 경제에만 좋은) 미국의 예외주의를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공식적인 관세 인상 조치가 없더라도 강달러 압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하원에서도 공화당의 과반 확보가 우세해지며 레드스윕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로 인한 트럼프 트레이드가 달러 강세 및 원화 약세 요인이 되고 있다"며 "현재 트럼프가 주장하는 보편관세 및 감세 정책은 미국 인플레이션 재가속 및 재정적자 확대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달러 강세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신한투자증권은 우리 산업구조의 약화로 인해 원화약세 현상이 고착화될 것을 우려했다. 인공지능(AI) 등 주도산업에서 한국 기업의 소외와 경쟁력 상실이 지속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레벨인 1200원대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기업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플랫폼 사이클에서 소외된 영향이 나타나면서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내년까지 1300원대 레벨이 뉴노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원·달러 환율 오름세가 지속되면 우리 외환당국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어 여기서 추가 급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 더 오르면 우리 정부나 한국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환율 관리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속도조절을 위한 외환당국의 미세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며 "환율이 올라가면서 수출업체들이 달러를 매도하는 상황이라 추가 상승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혁 이코노미스트도 "고점 인식에 따른 수출업체의 네고(달러매도) 물량 출회 및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로 인해 추가 급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