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실마리 풀릴까…의협회장 탄핵 기로 속 '사직 전공의' 끌어안기

현 집행부, "재신임 받으면 더 쇄신하고 전공의와 소통할 것"
보궐선거 시 사직전공의 지지받는 후보가 당선 유력

막말과 합의금 요구 녹취록 등으로 논란을 빚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에 대해 의협 대의원회가 오는 10일 불신임 투표를 진행한다. 임 회장이 공개 사과하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삭제하는 등 회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반응은 냉랭하다. 그간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 내부 단체들과 잦은 갈등을 빚던 임 회장이 물러나는 것을 계기로 의협이 의료계 대표성을 회복하고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긴급회의를 열고 11월10일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건을 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의협 내규에 따르면 불신임이 가결되면 임 회장은 즉시 직무에서 배제되고 60일 이내에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임 회장은 최근 장애인 비하 발언과 고소 취하 대가 요구, 10개월 넘게 계속된 의정 갈등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점 등을 지적받아 왔다.

의료계 분위기는 임 회장의 탄핵이 가결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처음엔 직접 투표를 통해 뽑은 회장이기에 믿음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면서도 "의정 갈등과 간호법 등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는 모습을 보이며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했다. 충청도 소재의 한 의대 교수도 "(임 회장이) 다소 과격한 면이 있어 의도하는 주장이 묻히는 것 같다"며 "회장으로서 억울해도 이제 뒤로 물러서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이 그간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과 불화를 벌인 것도 불신임 투표로 이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으로선 만약 임 회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어떤 결론을 내도 (전공의 대표인) 박 위원장이 반대하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며 "대전협 비대위와 관계 개선을 할 수 없다면 집행부 스스로 결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다만 임 회장의 불신임 투표가 부결될 수 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임 회장과 현 집행부가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해 대의원 3분의 1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협 관련 규정에 따르면 회장에 대한 불신임 안건은 선거권이 있는 회원의 4분의 1 이상 또는 재적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 발의로 성립하며, 재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 출석,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임 회장이 최근 개인적으로 대의원들에게 믿어달라는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탄핵이 무효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 회장 역시 재신임을 위해 최근 사직 전공의와의 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사직 전공의와 박단 위원장이 원하는 것들을 회무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임 회장의 분명한 의지"라며 "재신임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 좀 더 쇄신하고 소통에 나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돌아선 전공의 마음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차기 회장 후보들 행보 '잰걸음'

다만 사직 전공의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지역의 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임 회장의 불신임 투표가 부결돼도 현 의협 집행부와 소통하지 않겠다는 대전협과 대다수 사직전공의의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단 위원장도 지난 9월 자신의 SNS에 "의협 임현택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아래 기재된 네 사람(박 위원장과 손정호·김서영·조주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임 회장과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왼쪽부터)주수호 전 의협회장, 김택우 전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경기도의사회]

이런 가운데 탄핵이 가결돼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사직 전공의와 대전협의 마음을 얻는 후보가 당선이 유력하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사직 전공의를 설득하고 협력하는 일이 현 의정 갈등 해결의 열쇠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현재 차기 의협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주수호 전 의협 회장과 김택우 전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등이다. 이들은 이미 사직 전공의와의 관계를 다지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의료포럼' 대표인 주수호 전 회장은 지난달 20일 서울 모처에서 사직 전공의들을 초청한 행사를 열었다. 연사자로 이주영 개혁신당 국회의원과 유튜버 '지식의칼' 등 사직 전공의들의 선호도가 높은 이들이 나서 호응을 이끌었다. 특히 의협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박단 위원장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택우 회장도 사직 전공의들과 관계 유지에 힘쓰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의협 비대위원장 역임 당시 박단 위원장 및 사직 전공의들과 원활한 소통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임현택 집행부 출범 이후에도 꾸준히 대전협 관계자 및 사직 전공의들과 현안에 대한 대화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직 전공의인 김 회장의 아들이 12명뿐인 대전협 비대위원 중 한 명이라는 점도 관계 유지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동욱 회장 역시 꾸준히 사직 전공의들과 함께 발걸음을 맞춰 왔다. 그는 의정 갈등이 벌어진 이래 매주 토요일 '의료농단 사법만행 규탄 집회'를 49차례 개최했고, 지난 8월1일부턴 이태원광장에서 대통령 출근길 1인 피켓 시위를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의사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열린 시위에도 사직 전공의 30여명이 찾아와 이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바이오중기벤처부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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