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은기자
김민영기자
‘노인 등 금융취약층→하위 모집책→상위 모집책 및 주범→다단계 전문 변호사’.
아도인터내셔널과 같은 유사수신 사기로 법정에 선 고소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범죄피해수익의 흐름도’다. 돈은 화살표를 따라 움직인다. 피라미드 형태로 촘촘히 짜인 다단계 사기 모집책들은 주범이 설립한 본점을 거점으로 전국으로 뻗어나간다. 가담 순서에 따라 1·2·3·4·5레벨 직급을 부여받는다. 고수익을 미끼로 고령자들을 집중 공략해 돈을 끌어모은다. 그러다 갑자기 출금금지가 된다. 하나둘씩 사기를 인지한다. 주범과 모집책들이 재판에 넘겨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법정에서는 다단계 사기에 대한 ‘국가형별권’이 엄벌·응보주의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막대한 범죄수익으로 초호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한다. 무죄를 받고 양형을 깎기 위해서다. 아도인터내셔널의 경우 사기규모가 4400억원, 사기피해자는 3만6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서민대상범죄의 특성상 1인의 피해 금액이 5억원을 넘는 경우가 드물어 특정경제범죄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국고로 환수되는 범죄수익추징도 마찬가지다. 배상명령신청은 거의 인용되지 않는다. 추징도 기각된다. 상당수 피해자가 고령자나 저소득층이다. 비싼 수임료를 내야하고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사기범들은 이 틈을 노린다. 변호사를 바꿔 재판을 지연시킨다. 유능한 변호사를 활용해 형사법정에서 감형되거나 무죄를 선고받으면 그만이다. 출소 후에는 ‘코인’ ‘기획부동산’ ‘보이스피싱’ ‘주식리딩’ 등 내용만 다르지, 비슷한 형식의 사기를 꾸민다. 고령자나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 등 취약층은 또다시 먹잇감이 된다. “사기를 쳐도 남는 장사”가 성업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전관 출신 유능한 변호사 선임은 키가 된다. 실제 검사 시절 다단계와 유사수신 사건 분야에서 1급 공인전문검사에게 주는 ‘블랙벨트’를 받았던 이종근 변호사는 ‘휴스템코리아 1조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을 수임하며 22억원을 받아 ‘법조인 윤리’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고액 수임 논란 이후 사임했다. 코인 사기 고소인들을 주로 대리하는 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자주 마주하는 일”이라면서 “변호사 개인의 철학과 양심의 문제”라고 했다.
아도인터내셔널 코인사기 탄원서에도 ‘추징’과 ‘배상명령신청’을 촉구하는 호소들이 많았다. “우리는 신용카드 빚에 허덕이는데, 피고인들은 호화변호사 선임해 병보석을 받고 풀려난다” “추징금은 피해자들의 생명줄이다” “배상명령을 각하하지 말아달라”는 글들이 그랬다.
추징과 배상은 왜 어려울까. 앞서 2019년 국회는 서민다중범죄피해자들이 늘자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패재산특례법을 개정해 횡령·배임죄 등으로 국한됐던 부패재산몰수법의 적용 대상을 ▲범죄단체를 조직해 범행 ▲유사수신행위수법·다단계판매 방법으로 기망 ▲보이스피싱 등 특정 사기범죄로 확장했다. 조직적인 사기범죄로 피해를 본 사람이 범죄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범죄자가 빼돌린 재산을 국가가 찾아내 돌려주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 법정에서 이 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지난 7월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김지영 판사는 아도인터내셔널 사건 판결 1심에서 장모씨(7억6261만원)를 포함한 주범 이모씨(247억3713만원)·전산실장 이모씨(3000만원)·전산보조 강모씨(1억3900만원)에게 검찰이 구형한 추징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직접 민사법상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다는 사정이 발견되지 않았고, 일부 피해자들의 경우 데일리수당 등 수익금을 지급받아 이를 현금화하거나 재투자함으로써 범죄사실에 기재된 편취금액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앞서 2019년 1000억원대 다단계 사기 ‘MBG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이 부패재산몰수법 제5조에 따라 회장 임모씨로부터 상습사기 범행으로 취득한 범죄수익을 추징할 수 있다고 했던 사건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있었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돈이 최종적으로 얼마나 귀속됐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라 피고인으로부터 추징할 범죄수익을 산정할 수 없어 추징을 명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배상명령신청도 이런 추세 속에서 인용률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 1~9월 전국 법원이 받아들인 배상명령 신청은 1만131건으로, 인용률이 전체 신청(3만7165건)의 27.3%에 그쳤다. 2019년 41.2%, 지난해 35.0%에 이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형사 재판부는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기도 바빠 배상명령신청 각하나 추징 기각이 판례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단계 조직 사기’는 범죄수익을 특정하기가 까다롭기도 하다. 수만 명의 피해자의 입·출금 내역을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데 형사 재판부는 그럴 명분도 인력도 역량도 부족하다. 투자금 중 일부 수익금이 계좌로 들어왔다면 또렷하게 피해액을 산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범죄피해액을 산정해 배상명령을 인용한다 하더라도 고소인과 피고인간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민사소송을 통해 불복 청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 있다.
문제는 다단계 조직 사기에 ‘전관 변호사 선임’ ‘범죄수익을 지켜낸다면 곧 승소’라는 공식이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재범발생도 빈번하다. 아도인터내셔널 상위모집책으로 1심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장모씨는 동종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기소된 와중에도 같은 사기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을 통해 ‘사기 쳐도 남는 장사’가 통용되는 구조를 깨야 고령자 등을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민생사기가 줄 것이라고 조언한다. 김경환 민후 대표변호사는 “형사제도는 국가형벌권 행사고, 민사제도는 당사자들의 손해회복이 목적이라 배상 및 추징 등으로 인해 형사 사법 절차가 확장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법이론적인 고민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단계 사기는 공범의 모양이라든지 사기가 만들어가는 방향이 항상 유사하기 때문에 이 피해를 막고 보완하는 제도가 유명무실화되지 않도록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실장은 “상습 사기범 신상 공개로 채무 이행을 촉구한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아람 법무법인 SC 변호사는 “사기 재판에서 피해금을 산정할 전문 조사관을 배치한다면 배상명령 인용률을 상대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