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디지털 문맹' 문제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특히 매장 직원을 키오스크 등 자동 주문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업장이 늘어나면서,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의 소외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독일 등 일부 선진국에선 고령층과 비대면 기기를 연결해주는 일명 '디지털 도우미' 사업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디지털 도우미는 노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디지털 기기 조작을 돕고, 나아가 노인의 디지털 서비스 교육도 맡는다.
디지털 문맹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낯선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주문 한 번 못 해본 채 돌아섰다는 일화는 해외에도 존재한다. 노인에게 꼭 필요한 복지 혜택이 디지털 장벽으로 인해 막히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정부 서비스 지원 상당수가 전산화된 것에 반해 아직 노인들은 직접 관공서를 들러 도움을 받는 일에 친숙한 탓이다.
시민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디지털 사업이 오히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계층은 소외시키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이런 사례는 거장 켄 로치 감독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 사회 고발 영화에서 다뤄지며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국가는 노인의 디지털 사회 적응을 돕는 일명 '디지털 도우미' 사업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도우미는 키오스크 등 비대면 기기가 가장 널리 쓰이는 철도, 은행, 상점가 등에 배치돼 노인 소비자의 주문 처리를 돕는다. 앞서 지난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도입했으며, 1년의 사업 기간을 거쳐 그 효과를 평가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정부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겪은 뒤 노인 디지털 고립 문제의 심각성을 통감했다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대규모 감염병 사태 등, 원격 디지털 기기에 다시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대처할 수 있게 고령층의 디지털 업무 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게 사업의 핵심 목표다.
디지털 도우미는 단순히 키오스크 앞에 선 도우미가 아니다. 이들은 스마트폰, 키오스크, 정부 전산 서비스 신청 방법을 노인들에게 교육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독일에선 지난해 가을부터 전문 노령층 디지털 교육자 양성 과정을 신설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에서 노인사회홣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시니어디지털도우미' 사업을 운영한 바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에게 디지털 기기 조작법을 알려주는 강사들로, 지난해 말까지 여러 차례 정식 교육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니어디지털 도우미는 각각 10명의 수강생을 도맡아 수업을 진행했다. 주된 교육내용은 와이파이 연결, 스마트폰을 이용한 길 찾기,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인터넷뱅킹 활용, 쿠팡 등 이커머스 이용해 물건 주문하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변경하기 등이다. 또 키오스크 교육은 교육용 키오스크가 아닌, 실제 매장 등에서 사용되는 키오스크 제품을 직접 구매해 교재로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 한국미디어 패널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뱅킹을 사용할 수 있는 연령층 비율은 50대부터 58.4%로 급격히 낮아져 60대는 19.9%, 70대는 1.8%에 불과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는 온라인화된 은행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든 셈이다. 은행 지점, ATM기 등이 갈수록 줄어가면서 고령층의 기본 금융 서비스 접근 능력도 제한되고 있다.
같은 해 기준 국내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는 900만4338명에 달했다. 기초 디지털 교육이 필요한 인구가 900만명에 달하는 셈이다. '노인 디지털 도우미'가 앞으로 중대한 직업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