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기자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1)는 최근 베트남으로 5박 6일 여행을 다녀온 뒤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니 그동안 방치해둔 업무와 팀원들의 업무 관련 메신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인 줄 알았으나, 복귀한 지 2주 가까이 계속된 무기력감과 우울감, 두통, 어지러움 증상으로 이씨는 최근 병원을 찾았다.
이씨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휴가를 떠났는데, 복귀일이 다가올수록 휴가지에서도 기분이 우울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며 "복귀 첫날 밀려있는 메신저 창을 보니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이제 무엇을 기다리며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처럼 여름휴가가 끝나고 극심한 우울감, 무기력감 등을 느끼는 일명 '바캉스 증후군'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음 휴가를 미리 계획하거나 업무 속에서 사소한 목표를 세우는 등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7일 구인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남녀 직장인 330여명 가운데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69%에 달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한 가지 일에 몰두한 뒤 갑자기 에너지가 방전된 것처럼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주목할 점은 대다수 직장인이 번아웃 현상을 '휴가'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설문에서 '번아웃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했는가'라는 질문에 '휴가 또는 휴직을 취했다'는 응답은 47.9%로 가장 높았다. '업무 외에 취미생활을 즐긴다'(41.5%), '이직을 한다'(26.7%) 등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휴가 뒤에 더 큰 무기력증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만일 휴가에서 복귀한 뒤 2주간 무기력증, 우울감, 피로감, 두통,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지속되면 바캉스 증후군을 앓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체로 직장 내에서 업무량이 많고 휴가 기간이 길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바캉스 증후군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장시간 계속되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더불어 규칙적인 생활, 작은 목표 세우기 등이 일상으로의 복귀를 도와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직장인 중에는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여름휴가만을 기다리며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휴가가 끝났다는 것은 곧 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우선 휴가로 인해 깨진 신체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좋고, 다음 휴가를 미리 계획하거나 업무 안에서 사소한 목표를 세우며 실천해나가면 자연스럽게 증후군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