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쏟아붓고 공약마다 '꿀잼' 외치는 '노잼' 시장님들[노잼도시]

[노잼, 도시의 재미를 찾아서]
<4> 꿀잼을 위해 市는 달린다
① '밈'이 지방선거 이후 지자체 정책으로
후보 시절부터 꿀잼도시 공언한 시장들
랜드마크 조성·지역 문화시설 확충 공약

편집자주재미없는 도시, 이른바 '노잼도시'를 아시나요? 놀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부족해 현지인은 심심하고 타지역에서는 방문하지 않는 도시를 말합니다. 2019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러 도시를 두고 노잼도시라는 호칭을 붙였는데요. 재미로 시작된 일종의 '밈'이 대전, 울산, 광주, 청주 등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로 이어질 정도입니다. '노잼' 오명을 쓴 도시는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곳일까요? 도시를 재미있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공간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자 합니다.

<i>"꿀잼도시 대전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0시 축제'가 세계적 축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i> - 이장우 대전시장, 6월13일 대전빵차 전국 순회 이벤트

<i>"요즘 울산은 꿀잼도시입니다."</i> - 김두겸 울산시장, 6월24일 청년울산대장정 U-로드 발대식

<i>"광주가 재미있는 도시, 사람들이 머무르고 찾고자 하는 도시로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i> - 강기정 광주시장, 올해 1월8일 라디오 인터뷰

<i>"'꿀잼 1번지' 청주!, 즐겁고 살맛 나는 꿀잼행복도시를 만들어 가겠습니다."</i> - 이범석 청주시장, 올해 1월 신년사

'꿀잼'이란 단어가 지방자치단체 시장님들 입에 붙었다. 도시의 재미 창출을 핵심 정책 키워드로 내세운 대전·울산·광주·청주 등 네 도시의 이야기다. 2019년 온라인상에서 노잼도시 논란으로 오명을 뒤집어쓴 각 도시가 꿀잼도시 만들기에 나섰다. 인터넷 유행 콘텐츠, 이른바 '밈'이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거쳐 각 도시의 공약이자 정책에 제대로 스며들었다.

'꿀잼도시 만들기 프로젝트' 나선 대전·울산·광주·청주의 시 캐릭터들

시장님들의 '말·말·말'…"노잼도시 불명예 벗겠다"

꿀잼도시를 향한 현직 시장들의 행보는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전부터 시작됐다. 논란을 의식한 듯 이장우 시장은 2022년 5월 후보 시절 시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노잼도시라는 이미지는 대전 스스로 만든 것"이라면서 "노잼도시 불명예를 벗고, 대전을 365일 24시간 심쿵도시,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같은 달 김두겸 시장도 후보로 "가장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어 돈벌이만 하는 도시가 아닌 '꿀잼도시'로 반드시 만들겠다"고 발언했다.

강기정 시장은 2021년 선거를 수개월 앞둔 시점에 광주에 22세기형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며 "노잼이 아니라 꿀잼의 고향, 꿈을 찾아 떠나지 않고도 꿈을 실현하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후보 시절 핵심 공약으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꿀잼도시'를 내걸었고 이는 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다. 이범석 시장도 예비후보 시절 "시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 관광·문화·예술·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꿀잼도시 청주로 만들 것"이라며 관련 공약을 내놨다.

취임 이후 이들은 도시 곳곳에 재미 포인트를 만들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네 도시에서 지난 2년간 '꿀잼'을 키워드로 내세운 보도자료가 적게는 20건부터 많게는 300건 이상 나왔다. '꿀잼도시 OO(도시명)', '꿀잼 OO'이라는 수식어는 보도자료 '단골' 표현으로 활용됐다. 축제 개최 소식은 물론 공모전·강연 개최, 지역 시설 개관, 각종 예산 확보 등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꿀잼도시 만들기에 나선 시장들은 노잼 논란에 휩싸인 다른 도시와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김두겸 시장은 지난해 10월 문화의 날 행사에 나와 이전에 이장우 시장과 서로 '제일 재미없는 도시'라고 말을 주고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대전이 제일 재미없는 도시고 그 다음이 울산이랍니다...이번에 대전이 행사하면서 한 200만 명 왔대요. 그래서 꼴등을 면해 (이제는) 울산이 꼴등이라고 하더라고요. 이것도 부아가 차더라고요. 우리 이제 앞으로는 노잼도시에서 꿀잼도시를 만들 겁니다."
공약 들여다보니…랜드마크 조성-시설 확충에 관심

네 시장 모두 후보 시절부터 꿀잼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활활 불태운 만큼 공약에도 이러한 의지를 녹였다. 아시아경제는 2022년 6월 네 시장이 내놓는 문화·체육·관광 등 꿀잼도시 만들기 관련 공약을 살펴봤다. 현 시장의 임기가 절반인 2년이 남아있는 만큼 공약 실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꿀잼도시 관련 공약은 크게 ▲대규모 관광지 조성 ▲현지 시민이 활용 가능한 시설 확충 ▲축제 개최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네 도시는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구축해 외지인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으로 대규모 관광지를 조성코자 했다. 울산이 태화강 위 세계적 공연장을 조성하고 K-팝 사관학교를 설치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울산은 또 영남알프스 산악관광특구, 일산해수욕장 해양관광특구 조성 등 관광특구 구축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청주는 웰빙 치유형 테마파크와 농촌 체험형 생명팜랜드 조성 등이 공약에 포함됐다.

꿀잼도시 관련 정책의 절반 이상은 시민을 위한 시설을 짓겠다는 공약이었다.

네 시장은 제2대전문학관·제2시립미술관(대전), 국립산업기술박물관(울산), 아시아문화예술촌·전문 예술극장(광주), 청주박물관·근현대문화예술인 전시관(청주) 등 문화 시설 구축을 약속했다. 또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사회인 야구장·축구 경기장(대전), 공공골프장·실내놀이체육시설(울산), 다목적실내체육관(청주) 등 체육 시설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광주는 K-리그에서 활약 중인 광주FC를 시민구단으로 운영하기 위한 지원도 나서기로 했다.

이 외에 대전은 500만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0시 축제' 개최를, 광주는 국제 공연예술축제, 광주 페스타(공약 시 가칭·현재 'G-페스타 광주'로 명칭 변경) 등을 추진키로 했다.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울산 중구 생가 옆에 건립한 외솔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이러한 공약은 대부분 대규모 예산 투입이 불가피한 정책이다. 문화·체육·관광 등 꿀잼도시 만들기와 관련한 공약 발표 사항을 바탕으로 국비, 시비, 민자유치 등 예상 소요 예산 규모를 모두를 합산해본 결과 대전 1조3900억원, 울산 5200억원, 광주 6100억원, 청주 9800억원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됐다. 네 도시가 무려 3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문화·관광 자원을 확보하면서 재미요소를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전문가들은 도시의 재미 요소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장이 세운 방향성이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책을 마련하면 예산이 투입되고 제한된 예산을 어디에 지원할지 결정하는 것이 결국 지자체장이기 때문이다. 지역 랜드마크가 될 건물을 지을지, 지역문화 양성 구축에 방점을 둘지 등 정책 방향성에 따라 예산 분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랜드마크 만들어도 적자운영·방문인원 미달…"스토리와 콘텐츠 담아야"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랜드마크 등 설립을 두고 혈세 낭비라는 비판도 이어진다.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든 관광단지나 박물관 등 각종 랜드마크가 성수기에도 방문객 없이 텅텅 비어 '세금 먹는 하마'라는 날 선 비판을 받는 곳이 전국에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모습으로 단기간에 외부 방문객의 시선을 잡을 수는 있으나 지속가능한 방안은 아닌 셈이다.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 200억원, 기초자치단체 100억원 이상 건립비용을 투입한 박물관·체험관·문화시설·체육시설 등 공공시설 395개(데이터 미흡 3곳 제외) 중 2022년 연간 이용인원이 1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시설은 55%이상이었다. 전체 공공시설의 운영비용과 수익을 바탕으로 한 적자 규모는 7000억원을 넘겼다.실제 지난달 주말 기자는 울산의 외솔 최현배 전시관을 방문해 돌아봤다. 전시관 전체를 돌아보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시관 관계자는 오랜만에 외지인이 방문한 것에 신기한 듯 기자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여러 차례 물었고, 하루 방문객이 30명 정도라고 설명했다. 영상관은 평소처럼 꺼놨다가 기자의 요청을 받고 화면을 켰다. 이 전시관에는 2010년 개관 당시 5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투입됐다.경북 안동시가 500억원을 넘게 투입해 2013년 세운 유교랜드도 비판의 대상으로 종종 언급된다. 유교랜드의 2022년 방문자 수는 5만명도 채 되지 않으며, 같은 해 1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방문자 수가 월 2만명대로 올라선 적도 있지만 2019~2022년까지 이어온 연 10억원 적자 행진을 멈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이훈 한양대 관광연구소장(관광학부 교수)은 "이러한 공약은 사실 건물과 시설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두면 여기서 (수동적으로) 놀 것이라는 시각이 반영돼 있다"며 "하지만 진짜 재미라는 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놀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각 지역에서 이러한 랜드마크로 외부인을 끌어들이려는 것은 일부 이해한다면서도 "그 지역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담아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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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기획취재부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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