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소송]①시청역 사고 급발진?…잇단 사고에도 손해배상 확정 '0건'

해마다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하지만 인정 드물어
지난 4월 '볼보 급발진 의혹 사건' 1심 끝내 소비자 패소
‘BMW 급발진' 2심 이례적 제조사 책임 인정했지만
여전히 급발진 손해배상책임 대법원 확정 판례 無

편집자주지난 1일 15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인근 차량돌진 사고와 관련해 급발진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60대 가해 차량 운전자가 사고 원인으로 급발진을 주장하면서다. 유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급발진 여부는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일부는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급발진 소송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방안을 2회에 걸쳐 조명한다.

#2020년 10월 50대 여성 A씨는 경기도 판교도서관 인근에서 자신의 볼보 S60 차량에 시동을 걸어둔 상태로 잠시 내렸다. 이후 다시 차량에 탑승한 뒤 불과 몇 초 후 자동차는 굉음과 함께 최대 시속 120km가 넘는 속도로 약 500m가량 갑자기 질주해 분당판교청소년수련관 내부로 들어가 국기게양대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A씨는 전치 20주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A씨는 2021년 3월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라며 볼보를 상대로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한 대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제15민사부(재판장 최규연)는 위 사건에 대해 지난 4월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고가 자동차의 결함이 아니어도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상당한 가능성이 인정된다”며 “결국 A씨가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통상의 용법에 따라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에서 자동차의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거나 확대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5월 9일 항소해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해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법원에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이 인정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 3월까지 국내 급발진 의심 차량 신고는 총 791건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부 민·형사 소송 하급심에서 차량 결함이 인정돼 손해배상책임까지 지운 사례가 있지만, 대법원 상고심에서 최종적으로 급발진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1999년 대우자동차 운전자 42명이 급발진을 이유로 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관심의 초점이었다. 1심은 급발진 제어장치인 시프트록(Shift Lock)이 설치되지 않은 일부 차량에 대해 차량에 결함이 있다는 운전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지만, 결국 2·3심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급발진 사고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다고 해서 그 자동차가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자동차공학상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급발진이 일어나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운전자 본인의 과실이 없었다는 사실과 차량 결함을 소비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이 점이 제대로 입증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대법원 판결은 유사한 다른 사건에서 중요 판례로 인용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도 법원은 다른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16년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일가족 4명이 숨진 ‘부산 싼타페’ 사고의 유족 측은 차량 제조사인 현대기아차와 부품 제조사인 보쉬를 상대로 제기한 1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2016년 8월2일 부산 남구 한 주유소 앞에서 다대포로 휴가 가던 일가족이 탑승한 싼타페 차량과 트레일러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1명이 다치고 4명이 숨졌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1·2심 재판부는 “사고 차량의 브레이크 시스템은 정상 작동 상태였다고 인정할 수 있고, 브레이크를 정상 작동시켰다면 일정 거리 내에서 제동됐을 것”이라며 “사고 당시 브레이크 등의 점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원고가 사고 당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못했거나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제조업자의 손해배상책임 책임은 손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 하는데, 원고가 제출한 사설 감정 결과는 절차적 공정성과 객관성, 감정대상 차량 보존 문제 등 측면에서 신뢰하기 어렵다”며 “결국 이 사고가 싼타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급발진 소송에서 소비자가 승소하기 어려운 이유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상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입증책임이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자동차 제조업체에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위해선 차량 결함 등의 사고 원인을 직접 규명해야 하지만,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이를 규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피해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지난 4월 선고된 볼보 급발진 의혹 사건 1심 판결문에는 이례적으로 현행 제조물책임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내용이 담기기도 했다. 재판부는 “자동차의 급발진 의심사고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그중에는 실제 급발진이 발생한 경우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움에도, 우리나라에서 급발진으로 제조사에 책임을 인정하는 종국적인 판단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급발진 의심사고에서 제조물책임을 묻기 위한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좀 더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2018년 발생한 ‘BMW 급발진 의혹 사망 사건’은 이례적으로 1심 소비자 패소 판결을 뒤집고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BMW코리아가 상고해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있다. 당시 2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재판장 정진원)는 “이 사건 사고는 원고가 정상적으로 차량을 운행하고 있던 상태에서 제조업체인 BMW코리아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결국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고 판단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BMW코리아는 사고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해당 판결과 관련해 “운전자가 주장하는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에 대해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던 상태에서 자동차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거의 모든 다른 법원과 판결들은 이러한 유사한 급발진 사고에서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입증을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만큼 대법원에서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회부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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