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우래기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챌린지(2부)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 골프 선수 아버지의 한숨이다. "지난해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1년만 더 해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결국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올해도 챌린지투어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다. 아내와 아들의 장래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머리가 아프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 된다."
골프 선수는 비용이 많이 든다. 특히 정규투어가 아닌 챌린지투어 선수는 부모님의 경제적인 뒷받침 없이는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했다. 지금까지 20억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아직 1부투어에 나선 적이 없다.
이 선수의 아버지는 "정규투어가 아닌 2부투어를 뛰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레슨에 연습라운드도 해야 하고, 대회 참가비와 그린피도 내야 한다"면서 "1년에 적게는 8000만원, 많게는 1억원이 필요하다.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어 "협회는 안정적인 재원을 갖고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2부투어 선수들을 위한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협회는 부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와 KPGA는 신났다. 충분한 실탄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KL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는 호황이다. 작년 최대 당기 순이익인 241억원 달성했다. 그 전엔 순이익이 20~40억원 사이였다. 2023년 KLPGA와 KLPGT의 수입 총액은 672억원이다. KLPGA 수입은 466억원으로 집계됐다. 토지 및 건물 261억원, 이자 및 배당금 수입 178억원, 회비수입 26억원이다. KLPGT 수입은 206억원으로 드러났다. 방송중계권료 150억원, 경기수입 39억원, 이자수입 9억원 등이 포함됐다.
KLPGA와 KLPGT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배경은 방송 중계권료다. 작년부터 연간 150억원을 받는다. 탄탄한 재정이 확보된 셈이다. 여기에 KLPGA는 길동 사옥을 매입했다. 지상 4층, 지하 2층, 연면적 4297.52㎡(약 1300평) 규모다. 1~2층은 임대를 놓았다. 회비 수입도 만만치 않다. 현재 회원수는 3048명이다. 연회비 12만원, 상조비 6만원, 최초 등록비 300만원, 대회 및 선발전 참가비, 공인료 등도 수입으로 집계된다.
KPGA와 한국프로골프투어(KPGT)도 적지 않은 금액을 굴리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KPGA투어가 JTBC 플러스와 계약한 방송 중계권료는 18억원에 불과했다. 첫해 10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 3억원, 2020년과 2021년 2억원씩, 2022년 1억원을 받았다. 지난 5년 동안 평균 3억6000만원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으로 30억원 이상을 받았다. 투어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KPGA는 회원수 6935명, 정회원 연회비 30만원, 준회원 연회비 24만원을 받고 있다. 회비만 연간 20억원 이상이다. 입회비는 정회원 300만원, 준회원 200만원이다. 또 판교에 지상 10층, 지하 3층 규모의 KPGA 사옥이 있다. 매월 억대의 임대 수입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KPGA투어는 정확한 데이터 공개를 거부했다. "규정에 의하면 보여줄 수 없다. 언론에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총회 자료는 대외비로 적혀 있다"고 했다. KPGA는 지난해 지출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집행부 때 법인카드가 목적에 맞게 쓰였는지, 예산은 어떻게 지출됐는지 등을 체크하고 있다.
◆사용처, 그리고 올바른 투자= KLPGA와 KPGA의 많은 수입은 어디에 사용됐을까. 대부분 대회 운영비로 쓰였다. 2023년 KLPGA와 KLPGT의 지출 총액은 419억원이다. KLPGA는 총 294억원을 썼다. 토지 건물 및 사업비 283억원, 복지비 3억5000만원, 관리비 5억5000만원, 법인세 1억2000만원, 교육비 4000만원 등이다. KLPGT의 지출은 125억원이다. 경기사업비 46억원, 사업비 36억원, 관리비 21억원, 법인세 18억원이 주 사용처다.
국내남녀투어는 함박웃음이다.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다. 그러나 거품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상금액만 늘어났고, 대회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실속이 없다는 얘기다. 주요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흥미도 반감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 머물지 말고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대회 유치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KLPGA투어의 경우 드림(2부)·점프(3부)투어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기초가 없인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 지난해 드림투어 상금랭킹 1위는 문정민이다. 4842만6749원을 버는 데 그쳤다. 점프투어에선 양진서가 1376만1625원을 벌어 상금랭킹 1위를 차지했다. 대회를 뛸수록 적자만 쌓이는 구조다. 하위투어 대회에 상금을 늘리고, 출전비와 그린피 등을 면제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협회는 회원들에게 연회비를 받고 있다. 그에 걸맞은 지출이 필요하다. KLPGA는 지난해 회원 교육비 3600만원에 복지비 3억5000만원을 썼다.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부투어에 소속된 한 선수는 "회원들을 위한 과감한 교육과 투자가 필요하다. ‘회비만 내고 특별히 받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은퇴한 선수들도 협회의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했다. 현역에서 떠난 한 선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처럼 회원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데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프로 자격증도 다양한 레벨을 부여해 취업도 시켜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