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바꾼 유통지도]쿠팡에선 불가능한 '식품 맛보기'가 대형마트엔 최신무기

②고객 되찾기 나선 대형마트

마트 '그들만의 리그'는 옛말
'소비자 시간 점유' 개념 도입
온라인에 뺏긴 자리 탈환 나서
차별화 전략에도 기대 못미쳐
유통업법 개정 등 목소리도

"온라인 시장이 중요해졌다고 오프라인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프라인의 미래는 고객에 대한 광적인 집중과 연구를 통한 공간혁신에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5월 이마트 연수점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과 경쟁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정 부회장의 말은 단순히 온라인 중심으로 개편된 유통시장 환경 속에 오프라인 매장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다. 쿠팡이 지난 10년간 몰고 온 변화의 바람 속에 오프라인 매장이 처한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기도 했다.

과거 대형마트는 '그들만의 리그'를 치러왔다. 대형마트 3사로 불리는 롯데마트와 이마트, 홈플러스가 서로의 경쟁 상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대형마트 어느 회사도 그들만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쿠팡으로 대변되는 온라인 시장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온라인에 유출된 고객을 되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배경이다.

홈플러스가 최근 오픈한 '메가푸드마켓 2.0' 강동점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소비자들이 상품을 보고 있다. [사진제공=홈플러스]

점포 새단장하고 충성 고객 모으고

쿠팡 등 온라인의 성장은 대형마트의 형태를 바꿔버렸다. 과거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었다면, 현재는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매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온라인 시장으로부터 편의성을 맛본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면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대형마트사의 판단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대형마트 3사는 코로나 이후 점포 리뉴얼을 가속화했는데, 올해까지 새단장을 마친 매장 수는 80여개에 달한다. 현재도 곳곳에서 리뉴얼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그 수는 향후 더 늘어날 전망이다.

대형마트들은 공통적으로 리뉴얼 초점을 식품 중심의 '체험'에 맞추고 있다. 식품을 직접 보고, 맛보는 것은 온라인에서 절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란 점에서 착안한 차별화 전략인 셈이다. 대표적 사례가 홈플러스의 '메가푸드마켓'이다. 메가푸드마켓은 리뉴얼 점포 면적 절반 이상을 식품 매장으로 조성하고 신선식품과 즉석식품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e커머스와 차별화하려면 대형마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전문화해 고객을 다시 매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멤버십 제도 강화도 이들 대형마트의 집객 전략이다. 신세계그룹이 지난 6월 출범을 알린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 롯데마트가 올해 개편한 '스노우포인트'가 단편적 예다. 모두 쿠팡의 '와우 멤버십'과 같이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익숙하게 만들어 다른 서비스로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록인(Lock-in) 효과'를 극대화하기 노림수이다. 다만 이들 멤버십 제도는 2018년 선보인 쿠팡의 와우 멤버십과 달리 시행 기간이 짧아 직접 효과가 증명되는 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신세계 유니버스 페스티벌'에서 이인영 SSG닷컴 대표(왼쪽부터), 강희석 이마트 대표, 전항일 지마켓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여전히 힘든 경쟁구도… 규제 완화 목소리도

대형마트사의 이 같은 차별화 전략이 주효했다고 판단하기에도 아직은 이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로나 기간 분기마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던 국내 e커머스 시장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다고 하나, 올해 여전히 7%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쿠팡의 경우는 올해 사상 첫 흑자 전환이 기대될 정도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대형마트사들의 실적을 살펴봐도 롯데마트는 올해 2분기 매출이 1조42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 줄고, 영업 적자도 30억원을 기록했다. 이마트 역시 올해 2분기 530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으며, 홈플러스도 지난해 영업손실이 2602억원에 달했다.

쿠팡의 약진과 오프라인 매장의 불황 속에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그간 대형마트를 옥좨 온 대규모유통업법의 개정 목소리까지 나온다.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 등 대규모유통업법상 규제를 받는 동안, 쿠팡 등 e커머스 업체들은 온실 속에서 성장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홍대식 한국경쟁법학회장은 지난달 관련 세미나에서 "대규모유통업법 시행 후 법 적용을 받는 대형마트들은 사실상 모래주머니가 채워진 상황이었다"며 "유통 채널이 온라인으로 다변화하고 소비자 구매 성향도 바뀌고 있는 만큼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유통경제부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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