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송승섭기자
정부가 단시간근로자의 실업급여를 대폭 줄인다. 임금보다 많은 실업급여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공정한 실업급여 제도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지만, 실업급여 감소 대상자가 대부분 저임금·단시간 근로자일 가능성이 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급여기초임금일액 산정규정’과 시행규칙을 개선하기로 했다. 급여기초임금일액이란 고용보험법에 따라 산정하는 지표로, ‘하루에 번 돈’을 의미한다. 근로시간과 시급을 곱해 계산한다. 급여기초임금일액이 정해지면 이를 바탕으로 실업급여를 산출하게 된다.
정부가 개선 대상으로 삼은 부분은 근로시간이다. 급여기초임금일액 규정에 따르면 1일 소정근로시간이 3시간 이하여도 이를 4시간으로 간주한다. 이렇다 보니 단시간근로자의 경우 임금보다 실업급여를 더 많이 받는다. 가령 주 5일 하루 2시간씩 최저시급을 받은 A씨는 월급으로 41만7989원을 받지만, 실업급여는 두 배 이상 많은 92만3520원에 육박한다. 하루 근로시간은 2시간이지만 계산 때는 4시간으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규정을 삭제하기로 했다. ‘피보험자 이직확인서’에도 4시간 이하 근로자는 따로 구분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정확한 근로시간을 알 수 있도록 서식을 바꾼다. 달라진 규정을 적용하게 되면 A씨의 실업급여는 46만1760원으로 줄어든다. 기존에 받던 실업급여의 절반 수준이다. 근로시간이 더 적은 노동자는 실업급여 감소 폭이 훨씬 클 전망이다.
정부는 해당 개선안을 22일 열리는 고용보험위원회 내 운영전문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위원회를 통과하면, 자체 법제 심사와 행정예고를 거쳐 오는 11월에 시행하게 된다.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임금보다 많은 실업급여는 불공정하다’는 당정 간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실업급여 수급조건인 180일 근무를 1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밖에 허위 구직활동 제재 강화와 부정수급 특별점검 및 기획조사도 논의했다.
특위 위원장인 임이자 의원은 당시 “최저임금보다 높은 실업급여, 무제한 반복수급, 부정수급 등 구직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저해하고 있다”며 “상당수 수령자가 세후소득보다 높은 실업급여를 받는 불공정이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도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 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이라는 내부 논의도 있었다. 고용부 관계자는 “단시간근로자에 4시간 근로를 보장해준 건 1998년 제도가 시행됐을 때 최저임금이 한참 낮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은 최저시급이 많이 올랐고 실업급여가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 간담회도 많이 했는데 불합리한 사례라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용보험 재정상황도 악화하는 추세다. 고용보험기금 내 실업급여계정은 지난해 555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고용보험기급 적립금은 2017년 10조2000억원이었지만, 누적된 실업급여 적자로 지난해 3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액수가 2012년 3조4418억원에서 지난해 10조9105억원으로 3.17배 늘어난 영향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실업급여 하한액도 월 184만7040원으로 근로소득 179만9800원을 넘어섰다.
다만 실업급여가 줄어드는 단기근로자의 상당수가 고용취약계층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으로 사회복지사(가족요양보호사), 청소·방역종사자, 대학 시간강사, 돌봄서비스종사자, 안내·고객상담사 등의 실업급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상 고용상태가 불안정하고 처우가 나쁜 경우가 많다. 실업급여 수준도 대부분 100만원을 채 넘기지 않아 이른바 ‘시럽급여(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로 보기 어렵다. 월 하한액이 180만원을 넘는 장시간 근로자보다, 고용취약계층에 해당하는 단시간 근로자의 실업급여를 먼저 축소하는 셈이다.
실업급여가 줄어드는 근로자 숫자와 이에 따라 절감되는 실업급여 지급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관련 수치는 파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코로나19와 산업구조 재편으로 단시간 근로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중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2015년 3.4%에서 지난해 5.9%로 늘었다.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도 16%에서 30.2%로 급증했다.
공정한 실업급여 제도를 만들다가 고용취약계층 상당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노동시장의 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한데 실업급여 수용조건을 제한적으로 가져가면 실업자들이 빈곤 상태에 빠질 수 있다”며 “고용안정과 복지기능을 가지고 있는 실업급여를 줄이게 되면 단시간근로자가 사각지대에 노출될 확률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발간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를 통해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입법조사처는 “부정수급을 근절하지 않으면 국가사업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기금 낭비를 초래하고, 정작 필요한 경우에 지원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서도 “임시·단기 고용 형태가 많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반복 수급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과 취약계층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실업급여 전반에 대한 개혁을 진행 중이다. 현재 실업급여와 최저임금 연동구조를 없애거나 하한액 비율을 내리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부정수급과 반복수급에 대한 감독·감시도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