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부실대출 터지자 '세입자 탓'…새마을금고 46억 '전세사기' 소송 중

새마을금고 부실대출로 서울 '전세사기' 발단
세입자 상당수 보증금 못받고 살던 집서 내쫓겨
70여명 새마을금고 상대 46억원대 민사소송
새마을금고 "세입자, 확인만 잘 했어도…이해 안돼"

새마을금고의 부실 대출로 시작된 '전세 사기' 사건으로 새마을금고와 70여명의 세입자가 46억원대 보증금 반환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자 중 상당수는 이미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남은 세입자들도 언제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세입자들이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발생한 일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17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새마을금고 부실 사태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까지 나오는 등 금융권 불안이 확산한 가운데, 새마을금고의 부실 대출로 인한 피해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인 게 이번 서울 당산동·문래동 일대에 위치한 라프하우스 1~3동 전세 사기 사건이다.

2018년 사건 초기에는 피해 세입자 149명에 피해 금액만 100억원대에 달했지만, 수차례 취소와 유찰이 반복된 건물 공매 시도와 경찰 수사, 소송 등으로 6년이 흐르면서 상당수 세입자가 보증금을 포기했고, 지금은 70여명의 세입자만 남아 새마을금고와 신탁사를 상대로 46억원대 민사소송을 하고 있다.

6일 서울 종로구 MG새마을금고 경희궁지점에 '예적금 보호와 관련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이번 전세 사기 사건은 새마을금고의 부실 대출이 발단이 됐다.

앞서 건물주 이모씨는 2015년 서울 영등포구 라프하우스 건물 3개 동을 구입하고, 담보신탁을 통해 새마을금고에서 54억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이씨는 대출금액을 늘리기 위해 건물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을 터무니없게 낮춘 '가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해 새마을금고에 제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당시 이 건물 원룸의 전세보증금은 6000만~7000만원 정도였지만 가짜 임대차계약서에는 300만~500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건물의 담보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지기 때문에 이씨가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이 대폭 늘어난다.

통상적인 경우 대출을 해주는 금융회사는 대출 실행 전에 담보 건물을 방문해 세입자 등을 상대로 제출된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기 때문에 이런 사기 시도가 잘 통하지 않지만, 새마을금고는 세세한 확인 없이 이씨에게 거액을 빌려줬다.

보증금 500만원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원룸 보증금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금액이고, 이 대출에는 새마을금고 산곡 2·4동, 부평남부, 신길2동, 남인천 지점 4곳이 관여된 데다, 신탁사까지 끼어있었지만 기본적인 서류 위조도 체크되지 않았다.

이후 이씨가 새마을금고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새마을금고가 원금 회복을 위해 건물 매각을 시도하면서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초년생이다.

이후 새마을금고는 라프하우스 1동을 2019년 4월, 2동을 올해 초 각각 매각했다. 3동은 여러차례 매각 시도에도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2동에 살던 기존 세입자들은 올해 4~5월쯤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모두 쫓겨났다.

대부분의 세입자가 담보신탁 이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후순위이기 때문에 낙찰 금액은 새마을금고로 돌아갔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소액 임차인은 보증금을 선순위로 변제받지 못하더라도 세입자 보호 차원에서 일정 금액을 최우선순위로 변제받을 수 있지만 이 사건 피해자들은 이마저도 전혀 받지 못했다.

한 세입자는 "저희 건물은 3200만원이 최우선변제금액이라서 그 정도는 받고 쫓겨날 줄 알았는데 못 받았다"며 "이전에는 임차인에게 최우선변제금 권한이 있기 때문에 공매를 함부로 못 한다고 하더니, 막상 낙찰이 되자 정당한 임차인이기 아니기 때문에 최우선변제금도 못 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현재 새마을금고와 세입자 간 보증금 반환 민사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첫 기일도 열리지 않아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새마을금고가 여러 차례 공매를 신청, 취소하면서 소송이 상당 기간 지연됐다. 그 사이 세입자들은 소송 비용과 결혼, 이직 등 개인 사정으로 지쳤고,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도 해체됐다.

새마을금고는 이 사건의 책임을 건물주 이씨와 세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새마을금고 자신도 건물주 이씨의 불법 대출 피해자이고, 세입자들은 등기부등본과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이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는 설명이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부실 대출 의혹에 대해 "(이씨가) 작정을 하고 기망하려고 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며 "저희도 이자를 회수하지 못한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피해 세입자들에 대해선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새마을금고나 신탁사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이런 일이 안 벌어졌을 것"이라며 "(보증금) 몇천만원씩 주고 들어가는데 세입자들이 그 정도 확인도 안 한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세입자들은 새마을금고와 신탁사가 이씨의 사기 행각을 사실상 방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이다.

우선 새마을금고가 50억원이 넘는 거액을 개인에게 대출해주면서 담보 물건 확인을 이렇게 소홀히 했다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세입자들은 새마을금고 대출 직원과 이씨 사이에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실제 경찰과 검찰은 불법 대출 의혹을 조사해 이씨와 브로커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대출에 관여한 새마을금고 직원도 입건돼 조사받았으나, 고의성 등을 입증하지 못해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대출을 시도한 건물주와 그 사이를 이어준 브로커는 기소됐지만 정작 새마을금고는 법망을 빠져나간 셈이다.

새마을금고가 형사상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부실 대출이 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의 핵심 원인이 된 만큼 도의적인 책임은 피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신탁사가 건물주 이씨에게 '임대차 업무를 수행하라'는 내용의 공식 문건까지 보내줘 추가적인 전세 사기 피해자를 양산한 측면도 있다.

새마을금고는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논란이 된 전세 사기 문제가 가라앉으면 남은 3동에 대한 매각 절차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건물이 매각되면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들 역시 보증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건물주 이씨의 경우 이미 경제력을 상실해 보상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경제금융부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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