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코로나19 이전 대비 현재 사무실 점유율 : 미국 40~60%, 유럽 70~90%, 아시아 80~110%
3년간의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된 지금 서울과 도쿄 등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는 직장인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초기 경험했던 재택근무는 끝난 지 오래다. 아시아 직장인 대부분이 사무실로 출근한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의 직장인들은 10명 중 8명 정도가 사무실로 가려고 집을 나선다. 미국은 절반이 집에서, 절반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출·퇴근길이 고되고 피곤한 날이면 우리도 '재택근무의 성지' 미국처럼 될 순 없나 싶은 생각이 솔솔 올라온다.
지난 2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부동산 서비스업체 JLL의 국가·지역별 사무실 점유율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토대로 보면 현재 세계 상황은 이렇다. 미국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사무실에 있는 직원 비중이 절반으로 줄었다면, 아시아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사무실에 더 많은 사람이 있다. 서울과 일본 도쿄,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도시는 이미 2021년, 2022년에 사무실 복귀율이 75%를 넘어섰다고 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동시에 경험했다. 하지만 여러 형태의 근무 제도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유지해 나가는가 하는 건 각 국가·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각국에서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사무실 출근 등 근무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무엇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최근 연구,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한번 살펴봤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 각국 정부는 서로 다른 방역 조치를 내놨다. 현관문을 열고 한 발짝 나서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완전한 봉쇄 조치를 도입한 국가부터 마스크를 의무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까지 정부의 대응책은 제각각이었다. 업무 방식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셰바 기레이 악소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선임 연구 이코노미스트 겸 킹스컬리지런던 교수 등 다국적 연구진은 지난해 9월 내놓은 '전 세계 재택근무'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기간 중 정부의 제한조치가 길고 강력한 국가와 지역일수록 재택근무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운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만큼 새로운 근무제를 한층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이다. 영국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 정책을 단행,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택근무를 하도록 법으로 강제했다. 이후 봉쇄 조치를 해제했다가 다시 적용하면서 기간도 길어졌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였던 2020년 4월 영국과 미국 등 5개국 내 기업이 신규 채용 공고를 낸 걸 살펴보면 재택근무 조건이 기재된 경우가 2월 대비 200% 증가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 국가 중 이러한 현상이 가장 또렷하게 나타난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그렇다면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이러한 국가에서 자연스레 사무실로 복귀하는 수순이 이어지는 걸까. 그렇지 만은 않은 듯 하다. 재택근무를 경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국가마다 여러 요인들이 개입해 새로운 근무제를 도입하는 원인에도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가 2021년 조사한 내용을 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재택근무를 도입한 이유 1위로 '코로나19 제한조치 때문'(36%)이 꼽힌 것에 반해 미주 지역과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은 '직원이 원해서'가 각각 29%, 25%로 답변율이 가장 높았다. 최근 취재 중 재택근무 축소로 회사 사무실로 출근하기 시작한 국내의 30대 한 직장인은 "코로나19 조치가 풀리면서 재택근무를 계속 요구할 명분이 사라진 건 사실"이라고 했다. 아시아 지역이 미주나 유럽 등에 비해 엔데믹을 이유로 기업이 직원들에게 사무실 출근을 요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집에 강제로 갇혀 일을 할 필요도 없어지다 보니 직장인들은 이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용이한지에 판단 기준을 두게 됐다. 기업이 어떻게 일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업무 환경이나 문화, 직장인의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집이 곧 사무실인 재택근무의 특성상 집이 넓고 일하기에 쾌적한 공간인지 여부가 직장인의 근무제 선호도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아시아나 유럽 등에 비해 사무실 대신 집에서 일하는 이유로 거주 환경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쏟아지는 이유다.
닉 블룸 스탠드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 국가의 경우 아파트가 비교적 더 작은 경향이 있어 재택근무를 할 때 침실이 아닌 사무 공간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이를 구하기가 어렵다"면서 "집에 방이 적어도 세 개는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아파트는 그 정도로 크진 않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10명 중 8명이 주택에 산다. 한국은 10명 중 8명이 아파트에 산다. 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공간이 넓고 방도 많아 따로 집에 업무 공간을 둘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1인당 평균 방 개수가 미국은 2.4개로 일본(1.9개), 독일(1.8개), 프랑스(1.8개), OECD 평균(1.7개), 한국(1.5개)보다 많다. 침실에서 사무용 방으로 이른바 '출근'을 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마련하는 데서 국가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거다.
실제 국내에 있는 한 외국계 회사의 임원은 "20~30대 직원들은 완전 재택근무를 해도 공유 오피스로 나오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원룸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공간이 좁아서 답답하고 침대 옆에서 일하면서 집중력도 떨어지는 데다 점심을 챙겨먹기도 불편하다면서 나온다고 하더라"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면 산업적으로도 재택근무가 도입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별 산업 구조가 근무 형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택근무는 업무상 컴퓨터 사용 빈도가 크고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직업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제조업 공장처럼 특수 장비를 이용하거나 고객과 대면 서비스를 해야하는 산업군 비중이 크다면 재택근무 도입이 제한적이다. 코로나19 전후로 IT, 수학, 건축, 엔지니어링이 재택근무가 대폭 늘어난 산업군이라면 의료, 교육 등 대면해야만 업무가 가능한 분야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꼭 산업군으로만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산업군에 있더라도 회사 방침에 따라 새로운 근무제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센 교수 등이 채용 공고문을 분석한 논문을 보면 보잉과 록히드마틴, 스페이스X는 같은 항공우주 부문 회사였지만 차이를 보였다. 보잉과 록히드마틴이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아 올린 채용 공고의 비중이 2019년 한자릿수대였으나 2022년 50%를 넘겼다. 반면 같은 분야의 스페이스X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는 늘었지만 비슷한 채용 공고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유연 근무를 극도로 싫어하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담겼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재택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더라도 문화적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선호하는 국가는 유연 근무 도입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지난 1월 지식 근로자 대상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26년 이탈리아와 일본의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비중이 40%도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전체 평균보다도 10%포인트 이상 낮고,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보다도 더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 내외에 머물렀던 수치가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맞지만 일본과 이탈리아는 다른 국가에 비해 사무실 복귀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봤다.
란짓 아트왈 가트너 선임 애널리스트는 이탈리아와 일본 모두 사무실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유연하지 않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를 언급하면서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이탈리아나 일본처럼) 대면하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였는데 팬데믹을 겪으면서 변화했고 하이브리드 근무를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