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자연재해는 한순간 공포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변동으로 이어진다. 미래 전망이 어두울수록 희망을 찾는 움직임은 커진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는 전후 체제 극복이라는 열망으로까지 나타났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제국의 붕괴와 전후로 이어진 1945년 원자폭탄 투하와 대비되며 파국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총리대신 자문기구로 설치된 '동일본대진재 부흥구상회의'는 전체적인 재생과 부흥을 강조했다. 보고서에 "피재지(被災地)의 부흥 모델은 일본 전체의 장래를 선도하게 될 것"이라며 "고령화와 재해가 덮쳤음에도 불사조처럼 되살아날 일본 경제의 모습은 지금부터 고령화가 진행되는 아시아 각국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적었다. 한영혜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서 '현장에서 바라본 동일본대지진'에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전부터 여러 형태로 나타난 새로운 시대, '일본 재생'에의 열망이 투영돼 있다. 향후 동일본 대지진 부흥 과정은 '포스트 전후'의 구축 과정과 맞물려 전개될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연출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자세를 다시 상기시키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주인공은 규슈의 한적한 어촌에서 이모와 단둘이 사는 소녀 이와토 스즈메. 어느 날 꿈속에서 광대한 폐허에 홀로 남겨진 자신을 마주한다. 실체를 궁금해하는 그는 등굣길에서 우연히 폐허의 문을 찾아다니는 청년 무나카타 소타를 만난다. 뒤따라간 산중의 폐허에는 낡아빠진 문이 우두커니 서 있다. 스즈메는 호기심에 이끌려 열어젖힌다. 문 너머에서 재해가 넘어온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스즈메는 유아용 의자로 변해버린 소타와 함께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문을 찾아다닌다. 시코쿠, 고베, 도쿄, 후쿠시마, 이와테. 하나같이 과거에 크나큰 지진으로 피해를 본 지역들이다. 특히 스즈메의 고향인 이와테는 지금도 복구가 진행될 정도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발단은 12년 전 동일본 대지진. 규모 9.0의 강진으로 1만5900명이 숨지고 2523명이 실종됐다. 피난 생활 중 지병 악화 등으로 숨진 이들도 3784명에 달한다.
스즈메는 긴 여정의 끝에서 끔찍한 기억을 마주한다. 검은 쓰나미 물결과 불바다로 변해버린 마을. 이번에는 금방 흐릿해질 꿈이 아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 꼿꼿이 응시한다. 이야기 맥락으로는 소타를 구하기 위해서다. 소타는 유아용 의자로 변했다. 스즈메의 어머니가 생전 만든 기구로, 네 다리 가운데 하나가 없다. 스즈메는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른다. 동일본 대지진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잃어버린 기억과의 만남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지난 역경과 고난을 받아들여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대다수는 알면서도 외면한다. 고통받거나 다칠까 두려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온천 마을, 학교, 놀이동산 등은 그렇게 폐허가 돼버렸다. 신카이 감독은 소타를 통해 무관심과 방임이 또 다른 재난의 발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들 마음이 사라진 쓸쓸한 장소에 뒷문이 열리거든. 뒷문을 통해서 나오는 미미즈는 일본 열도 아래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힘이야. 요석으로 봉인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또 나와. 그걸 막는 게 내 일이야."
미미즈는 지렁이, 요석은 지렁이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두는 돌이다. 전자는 에도 시대에 큰 메기(오오나마즈)로 더 많이 형상화됐다. 지하에서 몸을 흔들어 지진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지진제를 지내고 거대한 돌을 얹어 머리와 꼬리를 눌러뒀다. 지진제는 땅의 부정한 기운을 씻어내는 의식이다. 토지 신에게 좋은 기운이 감돌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온천 마을, 학교, 놀이동산 등이 조성됐을 때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재해로 폐허가 된 뒤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버려진 땅을 토지 신이 지켜줄 리는 만무하다.
스즈메는 심중으로 불모지에 서린 아픔을 매듭지어 도시를 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구한다. 일련의 과정은 '이와토 가쿠레'를 연상케 한다. 일본 축제의 근원으로 전해지는 고사기 속 사건이다. 태양신 아마테라스는 동생인 스사노오의 난동에 겁을 먹고 하늘의 동굴인 이와토로 숨어 버린다. 세상은 암흑천지로 변하고 각종 재난이 발생한다. 신들은 이와토 앞에서 연회를 열어 동굴 밖으로 유인하기로 한다. 선봉에는 예능의 신인 아메노 우즈메가 선다. 춤과 노래로 아마테라스를 유혹해 세상에 빛을 가져온다. 그래서 새벽의 신으로도 불린다. 스즈메의 성은 이와토다. 이름은 우즈메와 흡사하다. '진정시키다', '가라앉히다', '잠재우다' 등의 의미를 내포한다.
스즈메는 혼자서 희망을 낚지 않는다. 소타는 물론 낯선 이들까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시코쿠에서 만난 아마베 치카는 하룻밤 묵을 방과 식사를 내주고, 쌍둥이를 키우는 니노미야 루미는 자가용으로 고베까지 태워준다. 동일본 대지진을 통과하면서 달라진 모습이다.
일본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메이와쿠 가케루나'다.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라는 뜻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죄악시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허용된 범위 내에서 철저하게 자유를 즐기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먼저 나서서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홀로 죽는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고정되다시피 한 가치관은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며 균열이 생겼다. 당시 지진은 여느 때보다 피해 지역이 광범위했다. 수도권에서도 귀택 난민, 계획정전, 방사능 불안 등을 겪으며 피해를 간접 경험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피해자들은 귀중품을 챙길 겨를도 없이 몸만 대피했다. 그걸 본 일본인들은 물질적 행복의 허무함을 통감했다. 가족과 친구, 지역 사회의 중요성도 느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다가 이웃을 끌어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치관의 변화는 일본 정부가 내걸었던 전체적인 재생과 부흥에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시스템 구축과 각종 사회 문제의 대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다시금 낮아졌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지역과 계층 간의 격차 확대, 고용 불안, 경제 리스크의 증가, 정부의 재정압박 등으로 고통받는다. 비단 일본만의 국지적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재해나 인재가 남긴 교훈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뼈아픈 가르침을 망각한 무지와 오만은 또 다른 미미즈로 이어진다. 이제는 기억하고 구해야 한다. 닫아도 닫아도 끊임없이 열리는 문을….
"눈물 따위로는 우리가 만난 일의 의미를 전혀 따라잡을 수 없잖아 / 이 몸 하나만으로는 모자라는 외침 / 너의 손에 닿았을 때만 떨렸던 마음이 있었어 / 의미를 몇 개나 넘어서야 그곳에 갈 수 있을까 / 어리석어도 괜찮아, 추해도 괜찮아 / 올바름 그 너머에서('스즈메의 문단속' OST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