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기자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당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알람이 울리자마자 20대 직장인 A 씨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A 씨는 최근 다이슨이 출시한 헤어스타일링 기기 '에어랩'의 중고 매물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 3월부터 에어랩의 가격이 인상된다는 소식에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새 상품보다 저렴한 리퍼 매물의 경우 구매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렇다고 리퍼 제품이 쇼핑몰 판매가 보다 가격이 월등히 저렴한 것도 아니다. 현재 일부 쇼핑몰에서 39만9000원에 판매되는 리퍼 제품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10만원 더 프리미엄 가가 붙어 팔리고 있다. 결국 여러 차례 허탕을 친 A 씨는 홈쇼핑을 통해서라도 에어랩을 손에 넣고자 방송 스케줄 체크에 나서기로 했다.
다이슨이 지난 2018년 출시한 에어랩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에어랩은 청소기와 공기청정기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우던 다이슨이 자사의 엔진 기술력을 집약해 만든 헤어스타일링 기기다. 열 손상 없이 헤어살롱에서 연출하는 스타일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강점으로 꼽힌다.
에어랩은 제품의 성능뿐만 아니라 비싼 가격으로도 유명하다. 출시 당시만 해도 54만9000원이던 가격은 현재 70만원에 육박하고 있어 '고데기 계의 샤넬'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계속된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에어랩이 이토록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에어랩이 가진 희소성과 높은 가격이 이용자에게 명품 브랜드를 이용할 때처럼 지위가 상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고 20일(현지시간) 전했다. 다이슨이 에어랩의 고가 마케팅에 성공하면서 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당당함과 고급스러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객의 이름이 이니셜로 에어랩 수납함은 여성들의 화장대를 빛내는 아이템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패션업계 인플루언서인 앤너리스 데이즈는 "에어랩은 디자인과 겉 포장만 봐도 기분이 좋고 마치 명품 핸드백 같이 느껴진다"며 "다이슨이 에어랩의 명품 마케팅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에어랩이 단순한 헤어스타일링 기기 이상을 넘어 뷰티 콘텐츠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서구권에서 '에어랩'은 웨이브 헤어스타일을 만드는 행위를 뜻하는 동사로 쓰일 정도로 수많은 뷰티 파생 콘텐츠들을 양산하고 있다.
동영상 공유플랫폼 틱톡에서는 에어랩과 관련된 동영상들이 40억번 이상 시청됐다. TV와 유튜브상에는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에어랩을 활용한 영상이 확산하기도 했다. 미국의 리얼리티 TV 쇼인 퀴어 아이에 출연한 인기 헤어스타일리스트 조나단 반 네스는 에어랩을 활용한 스타일링을 방송에서 여러 차례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마케팅과 콘텐츠로서의 기능 외에도 기기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도 에어랩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다이슨은 자사의 핵심 기술인 코안다 효과를 통해 열을 가하지 않고도 머리를 말리고 웨이브 스타일링을 연출할 수 있게 돕는다. 코안다 효과란 공기가 물체와 접촉한 상태에서 흐를 때 직선 대신 물체의 표면을 따라 흐르며 주변의 공기와 모발을 끌어들이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뛰어난 성능에도 엔진 소리가 조용하다는 것 또한 에어랩의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일각에서는 다이슨이 명품 마케팅으로 제품을 지나치게 고가에 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인 '뉴욕의 진정한 주부들'에 출연한 사업가이자 토크쇼 진행자 베서니 프랭클은 경쟁사 제품과 에어랩의 성능을 비교한 영상을 제작해 "다이슨의 브러시가 지나치게 단단하다"며 "(성능에 비하면) 이 가격 수준은 아니다.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앞서 다이슨은 지난해만 1월과 7월 두차례에 걸쳐 에어랩의 가격을 10만원가량 올렸다. 다음달 부터는 제품가격을 5만원 인상한 74만9000원에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