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뭄으로 인한 재앙이 겹쳐서 곡식이 풍성하지 못하니 백성이 어찌 살아갈지 참으로 염려된다. 비록 하늘이 주는 변고를 예측할 수 없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남김없이 다 해야 한다."('세종실록')
지진, 가뭄, 수해, 화재, 태풍, 전염병…….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재난들이다. 재난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도 없다. 대부분 자연의 움직임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이 재난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간이 어떻게 대비하고 대응하는지에 따라 재난의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역할이다. 그래서 세종은 "천재(天災)와 지이(地異)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지마는 그에 대한 조치를 잘하고 못하고는 사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세종은 '예방'을 철저히 강조했다. 평소 재난의 작은 기미만 보여도 즉각 대응했다. 큰비가 내리면 곧바로 침수 상황을 확인하고 수재 발생이 우려되는 곳을 점검하게 했으며 여러 날에 걸쳐 비가 내릴 때는 "반드시 수재(水災)가 있을 것이니 수문을 열어 물이 통하게 하고 관원들이 밤새 순시하도록" 했다. 겨울에 갑자기 날씨가 따듯해지자 "강의 얼음이 얇아져 사람이 빠질까 염려된다. 각 나루터에서는 얼음을 깨고 사람을 건너게 하라."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다.
장기적인 대응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여유가 있는 고을의 곡식을 흉년이 예상되는 고을로 옮겨 놓게 하는 등 언제 닥칠지 모를 재난에 대비하여 구휼 물품을 항시 준비하도록 했다. 식량 외에 종자용 곡물을 추가로 지원했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휼 행정도 전반적으로 정비했다. 흉년이 든 지역의 수령에게 구휼미를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했는데 상급 기관의 허가를 받느라 백성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라에서 신속하고도 시의적절한 대응을 펼치게 함으로써 재난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한 것이다.
-김준태, <조선의 위기 대응 노트>(민음사,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