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청소년②]가정폭력 피해 집 나왔지만…서울 16개 구엔 쉼터도 없어

쉼터·자립관 이용 청소년 중 72.1% "신체폭력 당했다"
일부 지역에 몰린 쉼터…강남구 쉼터는 문 닫아
쉼터 찾으러 서울서 천안까지 향하는 청소년들
학업 포기하는 청소년은 빈곤 악순환에 빠져

[편집자주] 1992년 우리나라에 처음 청소년 쉼터가 생기고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서울 YMCA는 최초의 청소년 쉼터를 설치하며 가정 밖 청소년의 비행을 예방하고 긴급생활지원, 교육 등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30년 동안 청소년 쉼터는 158개로 늘어나면서 조금씩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청소년 쉼터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자리가 부족한 탓에 가정 밖 청소년들은 거리에 방치돼 있다. 이들은 원치 않지만 굶지 않기 위해 성매매에 뛰어들기도 한다. 어른들이 애써 모른 척하고 악용하려 했던 가정 밖 청소년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대안을 찾고자 한다.

가정 밖 청소년 대부분은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집 밖을 나선다. 갈 곳이 없는 경우 청소년 쉼터의 빈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불균형하게 배치된 청소년 쉼터로 인해 가정 밖 청소년들은 학업도 포기하고 먼 길을 떠나야 했다.

13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가출한 청소년들 가운데 69.5%는 ‘가족과의 갈등’, 28.0%는 ‘가족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를 가출의 원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청소년 쉼터 및 자립지원관을 이용한 청소년 중 72.1%는 가정에서 신체폭력을, 72.9%는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하는 등 계속해서 가정폭력에 노출된 것으로 분석됐다.

가정 밖 청소년인 A씨(17)는 “학교 성적을 두고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언어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며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 좋지 못한 생각이 계속 들어 괴로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향할 청소년 쉼터는 부족한 상황이다. 올 12월 기준 전국의 청소년 쉼터 개수와 정원은 각각 138개소, 정원 1405명이다. 지난해 기준 가출한 청소년 수는 총 2만3133명으로 청소년 쉼터 정원수보다 16배나 많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엔 청소년 쉼터가 하나 더 늘어난 139개소로 반영됐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부족하고 불균형한 청소년 쉼터…학교 포기하고 쉼터 찾으러

지역별 균형도 맞지 않는다. 일부 지역에선 청소년 쉼터가 존재하지 않아 집밖에 나섰다간 아예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서울의 경우 쉼터가 하나도 확보되지 않은 자치구도 많다.

일시(최대 7일) 또는 단기(최대 9개월), 중장기(최대 3년)로 머물 수 있는 쉼터 자체가 없는 서울 내 자치구는 강남구, 광진구, 구로구,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동작구, 마포구, 서대문구, 서초구, 성동구, 성북구, 송파구, 영등포구, 종로구, 중구 등 16개에 이른다. 강동구와 강북구, 양천구, 용산구, 중랑구는 하나씩 있고 강서구와 관악구, 금천구, 은평구엔 쉼터가 2개씩 배치됐다.

1998년부터 운영되던 강남구립청소년단기쉼터는 지난해 말 태화복지재단이 위탁운영을 종료하면서 아예 문을 닫았다. 태화복지재단이 다시 위탁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강남구는 폐쇄 입장을 고수했다. 강남구의회 역시 다른 자치구에 쉼터가 있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정 밖 청소년들은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쉼터를 찾아가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다녔지만 청소년 쉼터가 없어 충남 천안까지 갔다는 가정 밖 청소년도 있었다. 부모님 동의 없인 전학 갈 수 없으니 학교에 아예 가지 않게 된다. 과거 가정 밖 청소년이었던 B씨(22)는 “가정 밖 청소년들은 쉼터를 찾기 시작하면서 학업 포기를 당연한 수순으로 여긴다”며 “검정고시의 기회가 있지만 당장 먹고살 돈을 생각해야 하는 가정 밖 청소년들은 학업에 신경 쓸 수 없다.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청소년 쉼터 현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정 밖 청소년 문제를 얼마나 가볍게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궁극적으론 가정폭력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해야만 문제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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