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경비원 갑질 방지법 만들면 뭐 하나요?” … 개정안 시행 1년 지나도 폭언·폭행 여전

故 최희석씨 형 최희철씨 “경비원 ‘을’로 생각하는 인식 바꿔야”
분리수거·주차관리 여전 …경비원 향한 ‘갑질’ 줄지 않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2020년 4월 21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는 상습 폭행을 당하다 5월 1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50대 입주민 A씨로부터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A씨는 아파트단지 안에서 이중 주차 문제로 최씨를 폭행했고, 자신의 범행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최씨를 경비실 화장실로 끌고 가서 감금하고 구타하며 사직을 종용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강북구청 앞에서 최씨를 추모하는 자리를 가지고 고인을 추모하는 등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 문제를 공론화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같은 해 12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후 항소했다. 이에 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정한 징역 5년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최씨의 형인 최희철씨는 당시 이른바 '최희석법'을 만들어 더 이상 고통 받는 경비원들이 없어야 한다며, 갑질 방지법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21일부터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라 불리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해 경비원들이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는 것을 막고자 하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는 개정안 취지를 '경비원들이 안전하고 존중받는 근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은 여전히 갑질이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관련 법이 개정됐지만 현장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다. 다음은 최씨의 형과의 일문일답.

'단지 내 주차 문제'로 시작된 한 주민과의 갈등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씨가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아파트 초소 앞에 주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5월 11일 당시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른바 '경비원 갑질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갑질이 줄어들었다고 보나.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경비원들이 갑질을 당하고 있다.

-갑질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

▲동생 사망 이후 정치권에서 관심을 크게 가졌지만, 그때뿐이다. 반짝 관심이었고 결국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갑질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갑질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있나.

▲관련 법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 형식적인 측면도 많은 것 같다. 예컨대 경비원에게 분리수거, 주차관리 일을 시킬 수 없게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분리수거하는 경비원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지 않나.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렇다면 갑질을 끝낼 수 있는 방법,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다. '내가 월급을 줘서 니가 먹고 산다'라는 인식을 바꿔, 서로 상호보완 관계로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다. 서로 조금만 배려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전한 고용 관계…끊이질 않는 갑질

유족의 지적과 같이 경비원들에게 갑질이 여전한 배경에는 불안전한 고용 관계가 있다. 통상 경비원들은 대부분 3개월, 6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 형태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 보니 2~3개월마다 사실상 계약이 종료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일부 입주민들의 갑질에도 경비원 입장에서는 참는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일종의 갑을 관계가 될 수 밖에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비원을 상대로 한 갑질은 계속 일어났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따르면 2014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횡포와 모욕으로 경비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2016년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관리사무소장에게 발언한 '종놈'이라며 막말을 한 사건, 2018년 경기도 오산시 모 아파트 입주민이 '인터폰을 받지 않았다'며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 2018년 10월 서대문구 한 아파트 입주민이 70대 경비원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 2019년 4월 부산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야구방망이로 관리사무소장과 관리 직원들을 위협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또 주택관리공단에 따르면 임대아파트 경비근무자에 대한 입주민의 폭언·폭행 민원은 2020년 19건에서 법이 시행된 2021년 24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법 개정 이후 관련 상담 건수도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월까지 이 센터에서 폭행, 폭언 관련 상담을 받은 사람 중 자신이 경비원이라 밝힌 인원은 25명으로 전년 동기(10명) 대비 2배가량으로 증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5월 아파트 경비원을 괴롭히는 주민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봐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다.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노동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인권위는 4명 이하의 사업장에서도 괴롭힘 금지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 자살 등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은 노동자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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