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린이야? … 8억짜리 가상인간 외모지상주의 논란

한국관광공사 국감서 가상인간 ‘여리지’ 외모 설왕설래
MZ세대 선호하는 눈·코·입 등 반영 … 전문가 “성형 부추길 우려”
외모에 집착해 각종 차별 일으키는 ‘루키즘’ 성행할 수도

강원도 평창 디지털 관광주민 제1호로 선정된 가상인간 '여리지'(왼쪽)와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 사진=한국관광공사, SM엔터테인먼트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한국관광공사 국정감사에서 공사가 제작한 가상인간 '여리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지난 7월 관광공사의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된 여리지는 관광공사가 약 8억원을 들여 제작했다. 그러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선호하는 눈·코·입 등을 반영해서 제작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19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리지와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의 사진을 화면에 띄우며 "왼쪽하고 오른쪽 사진이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신상용 관광공사 부사장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자 이 의원은 "왼쪽은 여리지, 오른쪽은 아이린이다. 둘이 똑같이 생겼다"며 "가상인간 도입 시도는 좋으나 초상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 의원은 "(여리지 얼굴에서) 아이린이나 배우 권나라가 연상된다"며 "MZ세대가 선호하는 눈·코·입 등을 반영해 만든 얼굴이라고 하는데 비현실적인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초상권 침해 요소도 있어

외모지상주의란 외모·몸매에 가치의 중심을 두는 사고방식을 뜻하며, 그런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시민들은 여러 의견을 내놓는다.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외모지상주의 논란에 대해 "꼭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외모, 멋진 외모가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리지 역시 못생긴 가상인간으로 만들었다면 홍보가 잘 되었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외모가 아닌 개성을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40대 회사원 박모씨는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어떤 매력과 개성을 보이느냐가 요즘에는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해 예쁘고 잘생긴 외모는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통계청에서 2020년 실시한 '인생에서의 외모 중요도'를 묻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69.3%, '매우 중요하다'는 15.9%이며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0.3%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잘생기고 예쁘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인기 끌기도

지난 6월 8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절도 혐의자가 공개수배 하루 만에 자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세린 레어드라는 이름의 이 여성 범죄자가 자수한 이유는 자신의 외모 때문이다. 시드니 노던 비치 지역 경찰이 조세린 레어드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공개 수배하자 네티즌들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결국 그는 자수 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과속 운전으로 모녀를 치어 숨지게 한 카메론 헤린 역시 비슷한 사례다. 헤린은 3년여에 걸친 재판을 통해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의 외모에 열광한 시민들이 '잘생겼으니 형량을 줄여달라'는 등 황당한 요구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최근에는 가평 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의 외모 등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팬카페 등을 만들어 논란이 됐다.

이렇게 외모에 집착하는 사회는, 결국 각종 차별을 일으킨다. 이런 현상을 루키즘(lookism)이라 말하는데,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라며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외모차별주의를 일컫는 용어다.

2000년 8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성·인종·종교·이념 등에 이어 외모를 21세기 새로운 차별 기제로 지목하면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 1994년 텍사스 오스틴대의 대니얼 해머메시 교수가 미국 경제학회지에 발표한 '미(美)와 노동시장에 관한 분석'에서는 외모와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밝혀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매력적인 외모는 동료 직원 및 고객에게 호감과 친근감을 주고 의사소통을 부드럽게 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며 외모에 따른 고용 차별의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는 고유의 개성이 매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예쁘고 멋진 가상인간을 통해 외모지상주의가 사회적으로 더 짙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지난 8월 CNN과 인터뷰에서 "가상 인플루언서가 한국에서 요구되는 미의 기준을 훨씬 더 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이를 모방하려는 여성들 사이에서 성형 수술이나 화장품에 대한 수요를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짜 여성들은 그들처럼 되길 원할 것이고, 남성들은 그런 외모를 가진 사람들과 데이트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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