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기요금 올린 정부의 ‘꼼수’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전기료 조정안서 언급 안돼

한국전력이 4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를 앞두고 있는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주택가에 전기계량기가 설치돼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4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에는 ‘맹점’이 있다. 바로 전기요금 구성요소인 연료비 조정단가 관련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국제유가 등 연료비 변동 폭에 따라 분기별로 조정되는 항목인데, 글로벌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4분기 전기요금이 올랐지만 정작 연료비 조정단가는 동결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정부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초 현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시장논리에 따른 ‘전기요금 원가주의’를 공언했다. 분기당 조정폭을 3원으로 제한한 기존 규정을 손보며 지난 3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5원 올렸던 이유다. 하지만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폭은 불과 한 분기 만에 ‘제로’가 됐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고물가 상황에서 무작정 전기요금을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은 서민경제와 직결된 만큼 국민적 반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물가당국은 전기요금 협의 과정에서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을 적극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이다. 증권가는 한전이 올해 3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단가가 최근 1년새 3배 가까이 치솟는 등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지만 연료비 조정단가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전력량 요금을 올려 전기요금에 연료비 변동 폭을 간접적으로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연료비 연동제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연료비 연동제가 제도 취지에 맞게 작동한 건 지난 3분기 한 차례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 요금 조정으로 시장에 향후에도 연료비 연동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외친 ‘전기요금 원가주의’가 무색해진 셈이다. 결국 시장논리를 존중한다는 정부의 공언(公言)은 한 분기 만에 공언(空言)이 됐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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