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글' 경쟁 피터지는데…기업 발목잡는 민노총의 春鬪(종합)

광화문 등서 내일 1만명 투쟁
번번이 투쟁수위 높여
기업혁신 꽉 막힌다

삼성, 임금 둘러싼 파업 위기
금호타이어·현대차 등도 갈등

전문가 "기업 생산력 악화 우려"
경찰, 5000여명 투입 고심 중

지난해 10월2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서대문역 네거리에서 '10·20 민주노총 총파업 대회'를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비정규직 철폐, 모든 노동자의 노조활동 권리 쟁취' 등을 촉구하는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유현석 기자, 장세희 기자, 김진호 기자, 문채석 기자] 노동계의 춘투(春鬪)가 본격화되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주요 기업들의 경영 시계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정글'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주요 대기업들은 강성 노조의 저항에 미래 먹거리 발굴이 줄줄이 막힌 상태다. 더욱이 친 기업 성향의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노동계의 투쟁 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기업들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12일 산업계 및 경찰 등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을 비롯해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등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강행할 예정이다. 집회에는 최대 1만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게 경찰 측 추정이다.

민주노총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당선인과 인수위가 반노동·반서민·친재벌 정책행보로 일관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비정규직법, 최저임금, 노동시간제한에 대한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성 노조 엄벌' 입장을 밝혀온 데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최저임금에 대한 손질 등을 시사해 향후 강경 투쟁 모드를 예고했다.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민주노총이 또다시 불법집회를 강행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와 글로벌 패권 다툼이 치열한 상황 속에서 경쟁력에서 뒤쳐질 위기에 처한 재계는 강성 노조에 번번히 발목이 잡히고 있는 상태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e-고용노동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 건수는 119건으로 전년 동기 105건 대비 14건 증가했다. 이에 따른 지난해 근로손실일수도 471일을 기록했다. 근로손실일수란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측정한 지표다. 극심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노사간 근로 조건 의견 불일치로 노조 측이 작업을 거부해 중단된 사업장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 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 친기업 성향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춘 정치 투쟁은 경제를 살리는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경찰은 13일 예정된 민주노총 집회와 농민대회에 1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보고 경찰 5000여명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도심 안에서 집회를 차단하거나 경부고속도로 등 진입로 자체를 막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법원은 민주노총의 집회 금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과 무관하게 도심 집회를 강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의 정보력을 토대로 예상한 운집 인원에 맞춰 병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집회는 대선 이후 첫 대규모 집회인 만큼 향후 새 정부의 집회 대응 기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면 현장 상황에 맞춰 판단해 질서 유지선을 가동하거나 경력 배치 지점을 정하는 등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창사 첫 파업위기 몰린 삼성전자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에서 지난 2월23일 오후 '삼성그룹 노동조합 공동 임금·단체 교섭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열린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임금 15.7% 올려달라."(삼성전자 노조) "국내공장 설비투자를 이행하도록 법적절차에 들어가겠다."(금호타이어 노조)

"미래차 전환이 고용불안으로 귀결된 경우 강력히 저항한다."(현대차 노조)

코로나19 엔데믹으로 기업 경영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주요 사업장마다 노조 리스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세계 공급망 붕괴로 각국이 비상 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노동계는 벌써부터 전투력을 높일 태세다. 이미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강성 노조 집행부가 잇따라 당선돼 강경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주요 경쟁 기업들이 발빠른 미래 성장 전략 마련과 대규모 투자로 국내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생존을 위해 노사가 합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날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임금인상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통상 노사협의회를 열어 2~3월 중 당해 연도의 임금인상률을 확정했지만, 올해는 노사 간 입장차가 커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핵심 쟁점은 임금인상률이다. 근로자 대표 측은 역대 최고 수준인 기본인상률 15.7%를 요구했으나 사측에서는 인건비 부담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전자 노사협의회는 평균 7.5%의 임금 인상에 합의한 바 있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삼성전자가 1969년 창사 이후 53년 만에 첫 파업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조가 교착 상태에 놓인 임금교섭 돌파구로 '파업카드'를 꺼낼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만 임금인상률 15.7% 요구가 너무 무리하다는 지적이 여론은 물론 삼성전자 내·외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노조 주장처럼 삼성전자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달성한 것은 맞지만 코로나19, 글로벌 반도체 경쟁 심화 등의 상황에 한꺼번에 인건비 부담을 대폭 늘리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국내 임직원 수만 11만여 명 이상인 삼성전자는 이미 다른 기업보다 인건비 부담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지출한 인건비는 약 15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8.4%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대표성 논란도 제기된다. 전체 임직원 11만여 명 중 4%에 불과한 노조가 전체 입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겠냐는 우려다. 회사 한 관계자는 "노조 자체가 대부분 특정 직급 위주로 구성돼 있어 다른 대부분의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에 갖고 있는 불만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인력" 외치지만 일터 경쟁력 외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지난해 7월5일 울산 북구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관련 쟁의발생 결의를 위반 임시 대의원대회를 연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자동차업계에서도 주요 사업장마다 노사 간 갈등이 불거질 조짐이다. 지난해 파업없이 임금단체협상을 끝낸 현대차·기아, 한국GM, 쌍용차 등은 올해 들어 기류가 바뀌었다. 강성 노조가 들어선 현대차·기아와 주요 계열사별 노동조합은 고용과 인력 문제 등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자동차 생산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회사는 물론 노조 안팎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인력 배치전환을 비롯해 완성차 생산물량 해외공장 이관, 신규 공장 설립 과정에 번번히 반발하며 사측과 지난한 협상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GM도 부평공장 인력 재배치를 둘러싸고 노사 간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부평공장의 두 생산라인(1·2공장)간 가동률 차이가 커진 데다 올 하반기 창원공장에서 시범생산에 들어갈 신규차종 등 공장간 인력조정이 필요한데, 노조가 처우개선 등을 문제삼으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GM 본사 차원에서 각국별 공장의 경쟁력을 따져 전기차 물량을 배정할 텐데 노조가 강경한 목소리만 낸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국내외 공장 투자건을 둘러싸고 맞서고 있다. 노사와 대주주, 산업은행이 지난달 연 회의에서 대주주인 더블스타는 "글로벌 톱 20위 가운데 금호타이어만 적자"라며 이전을 추진 중인 광주공장에 추가 설비투자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노조에서는 회사가 당초 예정한대로 국내 공장 설비투자를 진행하도록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노사 갈등이 더욱 첨예해 질 수 있다면서 기업 생산력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노조가 그간 정부와 협상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했다"면서 "그보다 노사 간 실질적 상생,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 생산성 이슈나 일터를 성장시키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김진호 기자 rplkim@asiae.co.kr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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