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수출효자 'K-건설'도 발목 잡힐라…중대재해법 우려

중대재해법 오늘부터 시행
현지 법 체계 따라 혼선 예상
해외사업 건설사들도 고심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 날인 27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27일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국내 건설사의 해외 현장에도 예외없이 적용될 것으로 보여 업계가 혼란에 빠졌다. 수출효자로 자리 잡은 해외건설 성장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어떤 경우에 법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기준 자체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해외 현장에 적용된다, 안 된다 등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라며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외국에서 사고가 나면 국내 본사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 해석"이라고 말했다.

◇속인주의 원칙 따라 해외현장도 적용될 듯= 법조계는 "중대재해법은 형사법 총칙에 따라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바른 박성근 변호사는 "해외건설 현장은 기본적으로 외국법의 적용을 받지만 한국은 속인주의 원칙을 따른다"면서 "만약 해외건설 현장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이 한국민이라면 한국법(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해외건설 현장의 경우 한국인은 대부분이 관리감독직을 맡고 현장 노동자는 현지인인 경우가 많다.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확률적으로 외국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법무법인 율촌 박영만 변호사는 "외국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문제가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이 경우 현장 상황과 현지 법체계에 따라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를 놓고도 혼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산업안전관리비 보장 기준 등을 보면, 한국은 산업안전관리 예산으로 3%의 예산을 예비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는 2%인 곳도 많다"며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적용할지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건설 1조달러 발목 잡힐라= 해외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건설사들은 안전관리 수준과 정도를 놓고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가장 큰 우려는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K건설’ 경쟁력 약화다. 한국 건설사들의 해외건설 수주 누적액은 지난 25일자로 9000억달러를 돌파했다. 1965년 태국 도로공사를 시작으로 한국 건설이 해외로 최초 진출한 이래 57년 만이다. 해외건설은 한국의 대표 수출상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306억2000만달러로 수출 주력상품 중 하나인 선박 수출액(230억달러)을 능가한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한국은 지난해 ‘세계 5대 해외건설 강국’으로 재진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공사 중단, 인력난 속에서도 해외건설은 호성적을 이어갔다"며 "이는 건설현장의 안전과 함께 공기단축 등 효율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건설사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법적 리스크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건설사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사례는 적지 않다. 2015년 국내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 등 입찰담합 혐의로 입찰제한 조치를 받았을 때, 국내 건설사들은 UAE 원전사업, 노르웨이 오슬로 터널사업 등 해외사업 수주에 심각한 애로를 겪었다.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 날인 27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관리자들이 현장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소송 급증"…업계 불안 고조= 모호한 규정에 따른 혼란은 해외사업장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산업계 불안에 대해 최근 "안전의무를 다 지키면 처벌도 없다"며 법 준수를 독려하고 있지만 앞으로 관련 소송이 범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법무법인 동인의 중대재해분야 전문 김성근 변호사는 "고용부는 시행령에 있는 안전의무 9개를 모두 이행하면 처벌을 안 한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없는 말"이라며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세부 의무사항이 100개, 200개도 넘을 수 있어 완벽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시행령은 경영책임자가 안전확보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규정했지만 적정한 예산 기준과 집행 방법 등 모호한 부분이 많아 고용부와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견건설사 임원 A씨는 "법을 지키고 싶어도 도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 소송은 무조건 증가할 것"이라며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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