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 약간 좋은 것 같은 그들의 말

고등학생들이 쓴 책을 교정보다가 “선생님, 이 수업 좋은 것 같아요. 가슴이 벅차요.”라는 문장과 만났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그들과 나는 MZ세대로 함께 묶인다. 올해 마흔이 된 나와 이제 곧 스무 살이 될 그들을 한 세대로 묶는 건 민망한 일이다.

작년에는 어느 평론가가 나를 MZ세대의 맏형이라 할 수 있는 작가, 라고 인터뷰를 해서, 친구와 함께 한참 웃고 말았다. 그러나 그 간극만큼이나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다. 적어도 M세대는 ‘OO한 것 같아요.’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스무 살 대학생들과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내가 무언가 질문하면 “OO한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틀린 답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정확한 답을 말하면서도 그러한 표현을 썼다. 언젠가는 쉬는 시간에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 이거 약간 좋은 것 같아.”

“맞아, 이건 어때.”

“응 이것도 약간 좋아.”

“이건?”

“약간, 헤헤, 약간 그런 것 같아. 약간.”

이건 아무래도 인간의 대화가 아닌 듯했다. 좋으면 좋은 거지 왜 그런 불확실한 추정의 표현을 계속 쓰는 건가. 게다가 저 ‘약간’이라는 부사가 몹시 거슬렸다. 왜 그런 자신 없는 부연을 더해가는 것인가. 한국어는 어쩌면 부사가 전부인데. 신경을 쓰다보니 그러한 대화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려왔다. 그들이 제출한 글쓰기마저도 그랬다. “OO한 것 같다.”라는 표현이 많았다. 그래서 영상 자료를 찾아서 강의 시간에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었다. 기자가 오늘 날씨 어때요, 하고 묻자, 어느 시민이 오늘 추운 것 같아요, 하고 답하는.

학생들은 그 인터뷰를 보고는 별로 이상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약간 OO한 것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그건 겸양의 의미라고, 우선은 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움에 더해,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거나 타인과 분쟁이 생기는 피곤한 일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할 때는 괜찮지만 글을 쓸 때는 추우면 춥다고 확실하게 써야 한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약간 너 사랑하는 것 같아.”가 아니라 “너를 사랑해.” 하고 선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도 약간, 그들이 그러한 조심스러운 삶의 태도를 계속 간직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것을 잘 참지 못 하는 확증 편향의 시대다. 특히 M세대들은 이제 젊꼰을 넘어서 그렇게 혐오해마지 않던 아재로 진입하고 있는 듯하다. 유튜브에서도 SNS에서도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만나기란 어렵다.

새로 나올 책의 뒷표지에 “선생님, 이 수업 좋은 것 같아요.”라는 문구를 크게 넣었다. 누군가는 좋으면 좋지 좋은 것 같은 건 뭐야, 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건 한 세대의 마음이 담긴 살아 있는 말이다. 그러한 마음이 이 책의 독자들에게도 읽히기를.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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