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썰]'증거 부족'… 결국 '미제'로 남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하였으나 피해자의 반항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인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10월 28일 대법원)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렸던 이 사건은 일명 '태완이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지난 2016년 수사가 재개됐다. 유력한 용의자인 택시기사 박모씨는 사건 발생 9년만에 잡혔고 그는 법정에 섰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결국 영구 미제로 남게됐다.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사건이지만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억울함을 풀지 못하게 됐다.

박씨는 지난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씨(당시 27세)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살해한 뒤 시신을 제주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시신은 피해자 실종 신고 8일 뒤에야 발견됐고 사망 시점이 '발견 전 24시간 이내'로 잘못 추정돼 장기 미제 사건이 됐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2016년 미제 사건 전담팀을 꾸려 이 사건 수사를 재개했고 박씨는 사건 발생 9년 만인 2018년 5월 경북 영주에서 검거됐다.

법정에서의 최대 쟁점은 '간접 증거로 살인 여부를 인정할 수 있는가'였다. 세월이 흐른 상황에서 택시 운행 경로를 담은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이 대표적으로 박씨 검거 당시 경찰은 차 운전석과 트렁크, 옷가지 등에서 A씨가 사망할 때 입은 옷과 유사한 실오라기를 다량 발견한 후 미세증거 증폭 기술로 증거를 확보했다. 결국 이 증거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진 셈이다.

특히 경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이씨가 입었던 무스탕을 돼지와 개에게 동일하게 입혀 동물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확인해보니 배수로 등 주변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해 동물 사체의 온도가 기온보다 낮아졌다 다시 높아지는 이상현상과 부패가 현지히 지연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A씨의 사망시각을 2009년 2월1일 실종당시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박씨를 구속, 2019년 1월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은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 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면서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범행이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역시 바뀌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물 털, 미세섬유 증거 및 CCTV 영상과 그 분석 결과 등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과학적 실험결과에는 오류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정확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일정량 이상의 데이터가 수집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동물실험결과는 단 1회의 실험결과만이 존재하므로 결과값의 정확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했지만 피해자의 반항으로 미수에 그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를 살인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 및 그 예외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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