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이 뭐, 나쁜 건가요?' 메달만큼 4등도 빛났다

우하람 韓다이빙 올림픽 최고 성적, 즐겁게 훈련해 이룬 결실
男 높이뛰기 한국신기록 우상혁 "재밌게 해야 잘 뛰어져"
체조 男 마루운동 류성현·역도 女 87㎏급 이선미 "많은 걸 배워"
메달을 놓치고 상대 배려 이소희-신승찬 "마음껏 좋아해도 돼"

영화 '4등(2015)'에서 유소년 수영선수 준호(유재상)는 4등만 한다. 메달에 집착하는 엄마(이항나)는 체벌 코치 광수(박해준)에게 교육을 맡긴다. 아들이 멍투성이가 돼도 시상대에 오르는 게 우선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시청한다면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메달리스트만큼 훌륭한 4위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미련도 후회도 없을 만큼 경기를 즐기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본다. 수영에서 자유를 느끼며 해맑게 웃던 준호처럼. "4등이 뭐, 나쁜 건가요?"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 3일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결승에서 1~6차 시기 합계 481.85점으로 4위를 한 우하람(23·국민체육진흥공단)은 "올림픽 4위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했다. 4위는 한국 다이빙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우하람은 5위 예브게니 쿠즈네초프(러시아·461.90점)를 무려 19.95점 차로 따돌리며 메달권에 근접했다. 온전히 다이빙 재미에 푹 빠져 이뤄낸 결실이다. 부산 사직초교 시절 5m 다이빙 풀 옆에 매트나 트램펄린을 두고 수차례 공중 동작을 연습했다. 남들은 두려워했으나 그에게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우하람은 2012년 진천선수촌 수영장이 완공돼서야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트레이너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부상 치료법 등을 공부하며 이겨냈다. 그 덕에 최대 다섯 종목까지 출전하는 강철 체력을 길렀다. 과감하고 멋진 공중 동작도 스스로 노력해 얻은 산물이다. 매일 다이빙을 일흔 번씩 뛰고, 두 시간씩 수중 훈련했다. "'남들보다 많이 노력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훈련했다. 아직 메달을 따지 못했다. '최초'라는 수식어에 만족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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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4위를 한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도 긍정주의자다.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2m35를 뛰어넘고 마냥 싱글벙글댔다. 이진택이 1997년 6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 2m34를 24년 만에 경신해서가 아니다. 더 높은 기록을 써 내려갈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음 올림픽이 3년 남았다. 예전에는 동메달이 목표였는데, 뛰어보니까 금메달도 가능하겠더라. 없었던 자신감이 불타올랐다." 높이뛰기를 즐기고 있어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그는 열악한 훈련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열정과 집념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래서 부담과 중압감이 컸을 결선에서도 스스로 '레츠 고(Let's go)', '올라타자'라고 주문을 걸며 웃을 수 있었다. 그는 2m39에 실패하자 "괜찮아!"라고 소리치며 자신을 위로했다. "항상 높이뛰기를 재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좋아야 높이도 잘 뛰어진다. 몸에 그렇게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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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체조 남자 마루운동 결승에서 4위(합계 14.233)를 한 류성현(19·한국체대)도 메달에 연연하지 않았다. 세계 최정상급 난도 기술 구사에 만족하며 보완 거리부터 확인했다. "올림픽에서 많은 걸 배웠다. 비틀기 동작 때 발이 꼬이면서 감점이 됐다. 더 다듬어서 다음에는 좋은 결과를 내겠다." 지난 2일 역도 여자 87㎏급에서 4위(합계 277㎏)를 한 이선미(21·강원도청)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경험이라는 소중한 가치에 의미를 부여했다.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좋은 선수들과 붙어봤으니 이제 긴장을 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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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을 놓치고 상대부터 배려한 4위도 있었다. 지난 2일 배드민턴 여자복식에서 김소영(29·인천국제공항)-공희용(25·전북은행)에게 0-2(10-21 17-21)로 져 동메달을 놓친 이소희-신승찬(이상 27·인천국제공항)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상대를 부둥켜안으며 축하를 건넸다. 이소희는 억울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저희랑 하는 바람에 동메달을 따고도 좋아하지 못하는 거 보면서 너무 미안했다. 마음껏 좋아해도 된다." 따뜻한 인간미가 메달만큼 빛난 순간, 한국스포츠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빛나는 4위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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