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추행 피해자 '피해자다움' 보이지 않았다고 피고인 무죄 판단 안돼'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성추행 피해자가 사건 이후 '강제추행 피해자가 통상적으로 보일 반응'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7일 대법원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준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2016년 말 B씨를 포함한 대학 같은 과 친구들과 1박2일로 놀러 갔다가 숙소에서 자고 있는 B씨를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B씨는 사건 이후 A씨와 범행 현장에 계속 머무르거나 숙소와 카페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단 둘이 술을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또 B씨는 사건 직후가 아닌 A씨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까지 2년7개월이 지난 2019년 그를 고소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종래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적용됐던 경험칙, 즉 '통상 성폭력 피해자라면 취하지 않았을 만한 행동이라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보기 어렵다' 식의 경험칙을 적용하는 데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이를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각 범죄의 성격에 맞게 경험칙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성폭력 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반면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구체적인 추행 상황에 관한 B씨의 진술이 명확하지 않거나 수긍되지 않는다"며 "사건 발생 이후 B씨의 태도는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의 반응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씨가 사건 이후 숙소에서 A씨와 휴대전화로 '셀프사진'을 찍거나 카페에서 그를 포함한 일행과 단체사진을 촬영한 점,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멀티방'(룸카페)에서 장시간 함께 있었던 점 등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원심은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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