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라면쟁이'라 불렀던 辛, 세계 울리고 떠나다

신춘호 농심회장 별세
1965년 창업 6년만에 라면 수출
연매출 2조6000억, 매운맛 고수 신라면 "세계서 최고"
사명 "농심" 농부의 마음으로 고품질·기술력 위해 노력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 전략을 갖고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달라."

지난 27일 신춘호 농심 회장이 향년 92세로 영면했다. 고(故) 신 회장이 임직원에게 내린 마지막 당부는 여전히 세계시장 공략과 거짓 없는 품질이었다. 한평생 라면 사업에 매진하며 세계 각국에 한국의 맛을 알리고자 했던 고인은 ‘식품보국’의 외길에 매진해 K푸드의 세계화 기틀을 닦은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춘호 농심 회장(죄측 4번째)이 2005년 LA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뚝심으로 일궈낸 라면 신화

신 회장은 라면쟁이, 스낵쟁이로 스스로를 칭하며 한평생 한 우물을 팠다. 직원 수 9명의 중소기업은 연매출 2조6000억원의 글로벌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 만인 1971년부터다. 국내 식품회사 중 가장 먼저 해외에 진출했다. 외국인 입맛에 맞도록 라면 맛을 바꿔보자는 의견에도 신 회장은 매운 맛을 고수했다. 그는 "한국의 맛이 가장 세계적인 맛이 될 것"이라며 끈질기게 임직원을 설득했다.

신 회장은 1980년대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신라면을 보이게 하라"고 말하며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농심은 1981년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했다. 농심의 서울 올림픽 공식 공급업체 선정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글로벌 농심의 초석을 다졌다. 이 시기에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도 60%를 넘겼다. 1996년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웠다.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공장을 지었다.

농심 해외 사업의 주역은 단연 신라면이다. 신라면은 월마트와 코스트코, 아마존, 알리바바 등 세계 최고의 기업이 선택하는 한국 식품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다.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도 라면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다.

현재 유럽의 최고봉에서 남미의 최남단까지 세계 100여개국에서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1976년 26만달러였던 농심의 해외 매출은 9억9000만달러로 성장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1978년 농심으로 사명 변경 주주총회 모습.

‘라면 장인’의 기술력, 품질 강조

신 회장은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형인 고(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 사업을 모색했다. 형의 반대에도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 회장은 35세가 되던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신 회장은 항상 기술력을 강조했다.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R&D) 부서를 따로 두고 해외에서 공법을 가져오는 대신 직접 개발한 이유다. 신 회장은 직원들에게 "맨땅에서 시작하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식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1980년 스프설비 조사차 유럽 출장길에 오른 신춘호 농심 회장.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

신 회장의 경영철학은 ‘이농심행 무불성사’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행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농부의 마음을 담았다. 사명을 ‘농심’으로 정한 이유다.

신 회장은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도전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도 불가피하다고 강조해왔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새우깡이다. 4.5t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며 개발해냈다. 신 회장은 "실패는 손실만 안겨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지혜와 또 다른 실패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며 "그래서 성공에 더 가까운 지름길을 안내해준다"고 항상 임직원에게 강조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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