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용접 밤엔 대리운전

[르포] 주52시간제 시행해 본 조선 협력사 中企-근로자들 한숨 뿐
수입 줄어든 기술자들 부업 절실, 협력사는 납기일 못맞춰 발동동
업계 “정부가 현실을 아는지 의문”

지난 4일 오후 울산광역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협력업체 인향 직원들이 선박 건조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 양충생 대표는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 숙련공들은 줄어드는 임금에 부업을 뛰거나 다른 일자리로 옮겨 구인난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울산=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소귀에 경읽기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모두 범법자가 되란 소리 밖에 더 됩니까."

울산시 전하동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인향을 운영하는 양충생 대표는 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제 유예기간 종료를 앞두고 울분을 쏟아냈다. 옥외작업만 7개월 가량이 걸리는 조선업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제도강행이라는 설명이다. 양 대표는 "선주가 배를 주문하고 납기를 정하면 그 배의 이후 일정이 다 짜여지기 때문에 납기를 못 맞추면 치러야할 위약금이 엄청나다"며 "혹서기, 혹한기에 작업이 어렵고 이번 여름처럼 태풍이 잦으면 작업이 밀리는 사정이 생길 수밖에 없어서 연장근로가 필수인 현장인데 그런 사정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대표는 "월급을 400만원씩 받다가 200만원 받으면 직원들 생활이 되겠냐"고도 했다. 올해부터 주 52시간제를 적용한 기업에선 용접기술자들이 주말에 타 업종 공장에 가서 용접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연차 미숙련 작업자들은 저녁에 대리운전을 뛴다는 건 이 지역에서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현실이다. 그래야 아기 우윳값이라도 벌고, 기존의 소득과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대표는 "일이 바쁠때 연장근로를 하면 익숙한 업무의 연장선에 있지만 줄어든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 엉뚱한 일을 하게 되면 휴식이 더 어려워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고 안전사고 위험도 크다"고 호소했다.

대형조선사별 주52시간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 표 = 중소기업연구원

중소기업연구원이 조선산업 사내협력사 근로시간을 실태조사한 결과, 조선업의 특성인 공정의 연속성, 선주에 의한 설계변경, 날씨에 따른 작업 지연, 공기준수의 중요성 등으로 약 78%의 협력업체가 주 52시간을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6%는 '빈번하게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내협력사 근로자들은 낮은 연봉을 이유로 이직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조립파트의 경우 연봉기준 최대 40%까지 임금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해 중소기업계는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초 정부는 올해 1월 주52시간제 연착륙 유도를 위해 민관이 함께 구성한 중소기업 노동시간 단축 업무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중앙회로 구성된 협의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지난 2월 이후 10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정례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 "긴밀히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기업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논의해왔다"는 정부의 해명이 궁색한 것이다.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코로나19 장기화로 위기를 맞은 중소기업에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 경영 상 타격은 두 배가 될 것"이라며 "특히 제조 중소기업 등에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경제적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제도 도입을 앞두고 탄력근로제 등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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