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정밀무기가 바꿔버린 전쟁'…아제르-아르메 뒤바뀐 전세

아제르바이잔, 드론과 첨단 무기 앞세워 나고르노카라바흐 주변 수복
아르메니아, 이제 믿을 곳은 러시아뿐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지난달 31일, 아르메니아 정부는 러시아에 급히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1990년대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을 패퇴시키며 나고르노카라바흐와 주변 일대를 실효 지배했던 아르메니아는 26년만의 전쟁에서 정반대의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자원병들이 훈련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AP통신 등은 이날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신속하게 아르메니아에 가능한 군사 지원을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런 요청에 대해 러시아는 즉답하지 않은 상태다. 그 이전에도 아르메니아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를 방문해 휴전을 중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르메니아가 이처럼 러시아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군은 현재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연결하는 도로 주변까지 접근한 상황이다. 자칫 이 도로까지 아제르바이잔군에 넘어가면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섬처럼 아제르바이잔에 둘러싸이게 되면서 아르메니아의 지원을 받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1994년 끝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때는 반대였다. 아르메니아군은 아제르바이잔군을 압도했었다. 당시 전쟁으로 아르메니아는 약 7000㎢의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점령했었으며, 아제르바이잔군은 막대한 인명피해를 겪었었다. 불과 수십년만에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제 항공기와 터키 드론을 갖춘 아제르바이잔군은 아르메니아의 탱크와 대공화기 등을 파괴하며 진격하고 있다.

영국의 군사 싱크탱크 RUSI(Royal United Services Institute)의 연구원 잭 와트링은 "아르메니아군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라면서 "한쪽(아제르바이잔)은 현대식 무기로 무장했지만 다른 쪽(아르메니아)은 1970~1980년대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아제르바이잔 정부 관계자는 "아르메니아는 오랫동안 무적을 자랑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오래된 군사 교리인 탱크와 중포, 요새화 등의 낡은 전술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반면 아제르바이잔군은 드론과 현대적 군사교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선이 어떻게 형성된 상태인지 등에 대해서는 서로 엇갈린 주장이 많지만,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군이 약 1500㎢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메니아 역시도 수세에 밀렸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아직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실정이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이처럼 불과 수십년만에 재개된 전면전 상황에서 양측이 입장이 엇갈린 것은 아제르바이잔의 대폭적인 군비 증강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부국인 아제르바이잔은 막대한 군비를 지출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은 최근 10년간 240억달러(27조2300억원)를 국방비에 쏟았다. 반면 아르메니아는 47억달러를 투입했다. 이런 국방비 지출액 차이 덕에 아제르바이잔은 항공기나 드론, 로켓의 경우 질 뿐 아니라 양에서도 앞서게 됐다.

전문가들은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과 러시아, 터키로부터 사들인 무기를 활용해 우위를 차지했지만, 아르메니아군의 경우 현대식 정밀유도무기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낼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특히 터키 바이락타르가 판매한 드론 TB2의 경우 아르메니아 지상군을 괴롭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외에도 군사작전 등에서도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2월 터키군이 시리아 정부군과 맞붙었을 때 사용됐던 전술을 아제르바이잔군이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터키가 단순히 무기 외에도 군사작전 단계에서도 지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앞으로도 아제르바이잔군이 계속해서 선전을 거둘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아제르바이잔은 평지 일대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 대부분은 산악지대를 차지하고 있어, 쉽지 않은 전쟁을 치러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더욱이 겨울이 다가오는 것 역시 아제르바이잔에 유리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역시나 아르메니아로서는 기댈 곳은 러시아뿐이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에 군사기지를 설치했고, 아르메니아와 외부로부터 공격받을 경우 동맹국을 지키는 내용의 방위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로서는 곤혹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동안 좋은 관계를 맺어왔던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의 형제국을 자처하는 터키와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제시한 평화안을 보면 이런 곤궁한 상황이 드러난다. 러시아는 1990년대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가 실효 지배해왔던 영토 일부를 국제법상의 지배국인 아제르바이잔에 되돌려주는 내용 등이 담았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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