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인터뷰 중 유독 '토론'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으로 들렸다.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된 그의 이미지 혹은 선입견 때문이다. 가수 겸 배우 함은정. 가수로 정상에 섰던 걸그룹 멤버. 하지만 그룹은 유독 탈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처음 도전하는 연극 무대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할지 궁금했다. 함은정은 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레 미제라블'에 '코제트' 역으로 출연한다.
함은정이 연극에 도전하는 이유와 '레 미제라블'에 대한 감상을 말하며 토론이라는 단어를 두 번 사용했다. "어떤 것에 쫓겨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깊게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분석하면서 토론을 거쳐 뭔가 결정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코제트를 공부하기 위해 '레 미제라블'을 읽다 보니 '아! 이래서 명작이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구나 생각했다."
연극에 도전하는 이유는 가수로서 보여준 것과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일 듯하다. 그는 인터뷰 기회가 반갑다고 했다. "대중이 '얘가 왜 갑자기 연극을 하지? 어떤 변화가 있어서 연극을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덟 살 때 연기를 시작한 아역 배우다. 티아라로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죽 연기를 병행했다. 연극은 처음이지만 연기가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다. 중학생 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에 '웬디' 역으로도 출연했다. 장르를 국한하지 않고 죽 연기를 했던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사진= 씨제스 제공]
함은정은 동국대 연극과를 졸업했다. 연기는 익숙한데 다만 연극이라는 무대가 낯설 뿐이다. "연극이라는 분야에는 그동안 감히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디딘 것이다. 배우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챕터라고 생각한다." 그는 "'레 미제라블'을 시작으로 연극만 할 것도 아니고 매체를 가리지 않고 연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연극 무대에 도전한 이유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작품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조건 준비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좋아하는 소설이다. 명작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나. '레 미제라블'이니까 하고 싶었다."
함은정은 다섯 권으로 이뤄진 '레 미제라블' 소설 원작을 다 읽었다. 극을 준비하면서 축약본이 아닌 원서를 다 읽은 것은 처음이다.
"읽고 나서 더 좋아졌다.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내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그 시대에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명작답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레 미제라블'의 가장 큰 매력은 시대가 달라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100년 전에 읽은 사람이든, 지금 읽는 사람이든 다 똑같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라면, 내가 장발장이었다면, 내가 자베르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왜냐 하면 선이 완전히 갈라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애매한 선에 사람들을 올려놓는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니, 과연 자베르가 나쁜 사람일까, 장발장은 지은 죄에 비해서 무거운 벌을 받았나 그런 질문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에는 자기를 되돌아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또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함은정은 소설 뿐 아니라 1950년대부터 '레 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를 죄다 봤다고 했다. 한국어 자막이 없는 영국과 프랑스 드라마도 챙겨봤다고.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BBC에서 제작한 '레 미제라블' 드라마였다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뼈대는 분명히 변하지 않는데 그외의 나머지 부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모든 극에서 나오는 코제트의 성격도 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 나의 매력, 나의 코제트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은정과 '마리우스' 역의 지상혁 [사진= 씨제스 제공]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함은정이 맡은 코제트는 어떤 면에서 고민이 가장 적은 인물이다. 함은정도 동의했다. 그는 다른 역할도 탐났지만 조금 더 깊이가 생긴 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레 미제라블'에서 유일하게 화사한 느낌의 색채를 가진 인물이 코제트다. 그렇지만 코제트도 분명 결핍이 있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결핍이 있었지만 아버지(장발장)의 사랑으로 아예 다른 화사한 인물로 바뀔 뿐이다. 사람이 사랑을 받고 안정된 삶을 누리면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코제트와 성인 코제트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처럼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숙제다. 하지만 결국 코제트도 결핍이 있는 똑같은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사한 삶을 산 코제트를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다."
함은정은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도전'을 부탁했다.
"연극을 좋아하지만 재미있다고 얘기를 들으면 가는 편이다.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재미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연극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 고충을 겪어봤기 때문에 관객들이 극장에 오는 것이 힘든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무섭다. 지금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도전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만큼 책임감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