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육의 평등성과 다양성

고교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필자는 1973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다. 나중에 교육 정책을 공부하면서 안 사실이지만 도입 당시에는 학교 여건이나 교육 수준을 평준화한 것이 아니라 연합고사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을 선발한 후 추첨으로 학교에 배정하는 것이었다.

1969년의 중학교 무시험진학제도와 달리 평준화 정책은 입학을 원하는 학생 모두에게 고등학교의 문을 개방한 것이 아니었다. 연합고사를 거쳐 인문계 고등학교에 배정되려면 중간 이상의 성적을 올려야 했다. 학교별 교육 여건 격차가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완전한 평준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직 교육의 다양성이 살아 있었다는 의미다.

정책이 지속되면서 학교 간 교육 여건의 격차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문제는 학교 내 학력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데 있다. 교육 수요에 맞춰 고교 신설이 늘고 일반계 야간이 주간으로, 또 전문계가 일반계로 전환되면서 일반계 고교의 경쟁률이 점점 낮아지자 학생 간 학력 격차가 점점 커졌다.

평준화 도입 당시에는 중간 성적 이상의 선발된 학생들이 한 반에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연합고사가 아예 없어지고 원하면 대부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어 학급 내 학력 격차가 더 벌어졌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력별로 걸러주는 장치가 사라짐으로써 겉으로는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한 교실에서 교육을 받고 있지만 실상은 능력과 관계없는 불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필자에게 평준화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다면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고교별 입시의 폐해를 직접 경험해봤고, 평준화 정책이 과도한 학교 서열화와 고교 입시 경쟁의 과열을 해소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준화 체제의 부작용을 무시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교육의 평등성 보장은 교육 정책의 이상이지만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쉽지 않다. 헌법 정신인 능력에 따른 교육의 기회 균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평등성 못지않게 다양성도 고려해야 한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도 능력이 다른데 모든 학생을 획일적인 제도로 묶어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정책은 완벽하지 않다. 평준화 정책은 필요한 정책이지만 충분한 정책은 아니다. 교육의 평등성 보장이 중요하지만, 다양성 확보도 필요하다.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외국어고·국제고·자율형사립고 제도를 찬성하는 이유다.

평등성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 교육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도입한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을 더 크게 본 결과다. 고교 체제의 다양성을 포기하면 평준화의 부작용이 부각될 것이다. 정책 당국은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평준화의 부작용이 해소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하나, 평준화의 부작용이 학점제의 부작용으로 바뀔 뿐이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학교도 필요하고 다양한 정책도 필요하다. 필자가 평준화의 문제점을 인지하면서도 원칙적으로 평준화를 찬성하는 것은 보통교육 정책의 큰 줄기는 평등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평등성이 살아나려면 이를 보완하는 교육의 다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외고·국제고·자사고 폐지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학교를 일반중학교로 전환하기로 결정했고 교육부가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국제중이 얼마나 잘못 운영됐는지, 평가는 제대로 됐는지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평등성이라는 잣대로 다양성을 과소평가한 결과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의무교육이라고 해서 모든 중학교가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교육의 다양성이라는 통로가 열려 있을 때 평등성도 설득력이 있다.

송기창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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