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美 GDP 충격보다 난해한 문제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2분기 미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9.5% 성장했다. 소비가 국내총생산(GDP)의 70% 가까운 나라에서 소비가 줄어든 것이 결정적이었다. 예비적 동기에 따른 저축이 늘어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비스이용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수치이지만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이미 지나간 사건이다. 실제로 독일은 2분기 -10.1% 성장했으나 그린슈트(Green shootㆍ불황에서 일어나는 경제회복의 조짐)가 보인다.

사실 구조적이고 난해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3월 민생안정을 위해 입법한 코로나19 구제(CARES)법안에는 채권자가 압류, 퇴거 등 재산권행사를 유예하는 권리행사보류(Forbearance)조항이 있다. 이 조항은 거주 및 상업용 임대에서 신용카드ㆍ자동차ㆍ주택대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권리행사보류 조항은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 위기를 당한 자영업자들이 빌린 돈까지 갚아야 하는 고통을 덜어주는 데 있는데, 일정기간 채무를 유예하는 것이지 부채탕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남용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이 조항을 미끼로 경쟁적으로 대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대출은 정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일부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당장 내지 않아도 되는데다, 정부가 제공한 각종 지원금을 받으며 집을 사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20%에 달하는 32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ㆍ연방정부의 실업보험금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중 이 조항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그 채무규모에 대한 통계는 발표된 적이 없다. 소득 하위 90%가 빚을 지는 상황에서 미납금이 수중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도 없다. 현재는 카드 빚이 많아도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카드대금을 받지 않아도 카드회사에 부실채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입자가 임대료를 내지 않고 집주인이 모기지대출을 상환하지 않을 때 그 폭탄은 보증기관ㆍ금융회사ㆍ투자자로 돌아가 결국 금융 생태계는 어려움을 맞게 될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빚을 갚아야 하는데, 언제 다시 지원책이 나올지 모른다. 현재 미 의회는 2차 지원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 과연 미국 대선일정을 놓고 어떤 조치가 이루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국제공항에 내리면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초상을 마주하게 된다. 트루먼이 존경을 받는 것은 흙수저 출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퓰리처상을 받아 더 유명해진 트루먼 전기(傳記)에 따르면 부계(父系)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대학에도 못 갔고 자신도 사업에 실패했으나 그는 아버지의 빚까지 갚은 성실과 근면으로 대통령에 올랐다. 성실과 근면은 미국이 남북전쟁 후 30년만에 독일과 함께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고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고 20세기 세계의 중심국이 되게 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며 이제 두 덕목은 미국사회에서 사라졌다. 엄청나게 늘어난 가계, 기업, 정부의 빚이 그 증거다.

누가 진 빚이든 그 빚을 빚으로 막을 수 있는 주체는 정부뿐이다. 학계는 팬데믹으로 더 늘어날 정부 빚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증세는 유력한 대안이 아니다. 경제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런 상황은 누구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주장대로 정부가 더 많은 빚을 질 수 있다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일각에서 점치듯이 돈을 찍어 빚을 갚거나 선별적인 국가부도로 해소하려 한다면 달러화중심의 국제통화질서는 더 빨리 와해될 수밖에 없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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