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사전] 도덕책 - 상식 밖 ‘괴짜’를 향한 묘한 수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화제와 논란의 재임기간을 보낸 괴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괴짜는 개혁하는 사람이다. 나는 정치가로서 괴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별명은 '헨진(變人ㆍ괴짜)'이었다. 스스로도 그 별명이 싫진 않았는지 공식 석상에서 자신을 '정치가로서 괴짜'라 칭했다. 자민당 총재 당선 전까진 10선을 기록하고도 변변한 파벌도 없었고, 간사장이나 외상과 같은 주요 보직 대신 후생상과 우정상 등의 한직을 전전했다. 스물일곱, 첫 중의원 당선 당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후광을 곱빼기로 받아 당선됐다"는 소감을 밝혀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총리 재직 시절엔 G7 회의에 동석한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향해 "스파게티! 마카로니! 소피아 로렌!"을 외쳐 기자단으로부터 '부끄러운 줄 알라'는 야유를 들을 만큼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하는 인물이었다. 우정상 시절부터 주창해온 우정 민영화를 관철하기 위해 총리 시절 자민당의 핵심 집표 조직인 전 우편국장OB 단체 '전국대수회'를 단숨에 잘라내며 그가 던진 말은 "우정성 산하 공무원 26만명보다 일본 국민 1억명이 더 중요하다"였다. 정치인으로서 영예인 중의원 연속 재직 25년 표창 수여 때도 그는 "행정개혁의 제1보는 정치인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도덕책'은 초성이 같은 부사 도대체를 대체하는 단어로 쓰인다.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기행, 뛰어난 성과에 대한 칭찬 또는 상대를 비꼬는 반응을 보일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되곤 한다. "당신은 도덕책" 따위다. 긍ㆍ부정을 통섭한 도덕책과 같았던 고이즈미의 기행은 가족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결혼 4년 차, 고이즈미는 셋째 아들을 임신 중인 아내와 돌연 이혼을 선언한다. 22년 뒤 그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며 총리관저에 면담을 신청하자 고이즈미는 "혈연은 맞지만, 부자는 아니다"라며 면담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의 지역구를 세습하며 일본 정계의 아이돌로 떠오른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은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Fun하고 Cool하고 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며 한일 양국에서 밈(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요소 또는 컨텐츠)으로 떠오른 바 있다. 참으로 '도덕책' 같은 부자의 기이한 언행 유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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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례
A: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재밌는 거라도 있어?B: 뭐긴 우리 영롱한 BTS 기사지. 5개월째 메인 앨범 차트에 머물러 있다고.A: 야, 우리 토익 점수도 늘 같은 박스권인데... 머무르는 게 좋은 게 아냐.B: 현생의 고난과 슬픔, 덕질로 이겨보자는 건데 넌 참... 도덕책이다. 도덕책.A: 그래, 내가 도덕책이다. 야, 기사 창 내리고 빨리 RC 수업이나 보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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