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부어라 마셔라?' '술술술' 연말 송년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말 모임 앞둔 직장인들 동상이몽
끝없는 술자리…일부서 '갑질' 사고도

자료사진.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 40대 중반 직장인 A 씨는 12월 연말 부서 모임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부서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송년회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사실 송년회는 음주도 좀 적당히 하면서 속에 있는 흉금을 좀 털어내는 자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밀레니얼 세대, 90년대생 등 젊은 친구들도 있고…적당히 여론을 수렴해 1차에서 끝나는 송년회로 준비하고 있다"고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송년회는 '한 해 동안의 온갖 수고로웠던 일을 잊어버리자'라는 의미로, 과거 망년회(忘年會)로 많이 쓰였지만, 일본식 한자어이기 때문에 이를 '송년 모임'이나 '송년회'로 순화해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송년회를 둘러싼 직장인들의 동상이몽이다. 송년회를 안 하자니 섭섭하고, 하자니, 직급과 세대 차이가 있어 하지 않으니만 못한 송년회 자리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예 연말 모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올해 하반기 한 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한 20대 후반 B 씨는 "사실 송년회 자리 성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직급이 낮은 사람은 몇 시간이고 계속 상사 말에 호응해주는 소위 '리액션' 기계로 있어야 하는데, 정말 너무 지친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런 게 직장생활인지는 알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정말 힘들다(웃음)"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의 30대 중반 C 대리는 "직장인 중 송년회를 송년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어차피 업무의 연장선이다.'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송년회 시간은 무사히 잘 적당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간 연말모임은 생각의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직장인 31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매일 보는 사이에 연말 모임은 꼭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직장인은 61.5%, '직장 송년회 생략'을 원하는 직장인은 17.1%로 나타났다.

또 직장인들이 원하는 송년회 형식은 '회사 부근에서의 간단한 점심식사'(33.3%), '분위기 있는 곳에서의 저녁 식사'(20.5%), '영화, 공연, 스포츠 관람'(15%)으로 나타났다.

연말 모임에 참석하지 않거나 아예 송년회 자리를 만들지 말자고 하는 배경 중 하나는 해당 자리도 결국 업무의 연장으로 볼 수 있고, 일부에서 직급이 낮은 사원을 괴롭히는 '직장 내 괴롭힘'도 중요한 원인으로 해석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괴롭힘 정도를 조사한 '갑질지수'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회사에서 원하지 않는 회식문화(음주, 노래방 등) 강요'가 42점에서 29.9점으로 하락했다.

이는 강압적인 회식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또 동시에 '직장 갑질'은 회식 자리에서 만연하게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는 기업 총수가 도를 넘은 갑질을 해 큰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본 매체 데일리신초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한 연예 기획사 사장은 송년회 자리에 참석한 23살 직원 얼굴을 끓는 전골 냄비에 집어넣었다. 분위기를 띄우라고 말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얼굴에 외상을 남길 정도로 화상을 입은 직원은 "사장이 일상적으로 괴롭혔고, 클라이언트도 있으니 재미있는 걸 보여주라"면서 "냄비에 머리를 넣어보라고 말하고, 주변도 그에 동조하자 마지못해 냄비에 머리를 넣었다"는 토로했다.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갑질'이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40대 직장인 D 씨는 "술 한잔 먹다 보면 이성이 마비되고 험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회식 자리는 적당히 먹고 일찍 집에 가는 게 좋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40대 직장인 E 씨는 "오후 9시에 회식을 끝내는 게 딱 좋을 것 같다"면서 "사실 회식 자리에서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는데, 연말을 정리하는 자리인 송년회 경우 과거 일부터 시작해, 할 말이 참 많으니 더 (사고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은 송년회 등의 회식 자리를 불편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설문 조사플랫폼 두잇서베이가 직장인 3,0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16명(59.4%)이 '송년회 참석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부담되는 이유로는 '분위기 자체가 불편하다'(17.0%)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이어 '음주 강요(16.8%), 경제적 여유 부족(14.6%) 순이었다. 이어 '불편한 사람이 있어서'(11.1%), '장기 자랑'(7.6%), '송년사 등 멘트 준비 부담'(7.0%) 등이 뒤를 이었다.

최악의 송년회 유형에 관한 질문에는 '먹고 죽자'형(28.1%)이 꼽혔다. 이어 강압적으로 참석을 요구하는 '안 오기만 해'형(28%), 회사상사·선배가 동석한 '어쩐지 불편해'형(20.0%) 순으로 집계됐다. 선호하는 송년회로는 음주가 없는 '논 알코올(Non-Alcohol)'형(10.8%), 영화/공연 등을 관람하며 즐기는 '문화체험’형(10.7%)이 순위에 올랐다.

전문가는 의미 있는 연말 모임 시간을 추천했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사는 YTN과 인터뷰에서 "(송년회 자리 중)상사일 경우에는 직장에서의 권력으로 부하 직원을 곤경에 빠지게 할 수 있다"면서 "송년회를 꼭 진부하게 술자리로 푸는 것이 과연 좋은가 의문을 갖고, 구성원들이 모여 보육원이나 양로원 시설 등으로 봉사활동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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