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기감영은 왜 한성부에 있었을까

서울역사편찬원, 연구서 '조선시대 경기 연구' 발간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조선시대 경기감영은 왜 한성부에 있었을까?'

서울역사편찬원은 이 난해한 질문에 답하는 종합연구서 '조선시대 경기 연구'를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서에 실린 논문들은 조선시대 경기 재편과 위상 변화, 조선시대 경기 지역 목장 연구, 조선시대 경기감영 설치와 변화, 조선 후기 서울-경기 지역의 성장과 물류유통 구조 등을 다루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앞선 질문의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기감영이 도성 안에 자리하게 된 이유는 국왕과 경기감찰사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었다. 국왕은 도성 주위를 감싸는 경기의 수장인 경기감찰사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다. 경기관찰사는 경기를 관할할 뿐만 아니라 도성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예컨대 국왕이 왕릉 행차에 나설 때가 그랬다. 또 국왕은 농사의 형편이나 제도의 시행 여부를 파악할 때 경기관찰사를 불러들여 상황을 물었다. 이런 이유에서 당시 경기감영은 한성부 반송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경기'라 불리는 지역은 현재 서울에 포함된 지역이다. 한양도성과 한양도성 4㎞ 인접지에 포함되지 않은 오늘날의 서울 강남 지역 등이다.

이 연구서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 등에 무상으로 배포된다. 구입을 원할 경우 시청사 시민청의 서울책방에서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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