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들깨를 터는 저녁/이윤학

구장네 아줌마 둘이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깨를 턴 포장에서 뒹굴었다

서로의 어깨를 잡고 흐느껴 울었다

누레진 들깨 토매를 털었듯이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산의 멧비둘기가 시원하게 속을 긁었다

벌써부터 구장의 프라이드 베타가

산모롱이에 정차해 있었다

아줌마 둘이서 바람을 등지고

들깨를 까부르는 소리 키로 쏟아졌다

티끌 하나 없이 흡혈하는 하늘

들깨를 턴 냄새가 스며들었다

■ 꼭 시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특히 시는 말을 아끼는 까닭에 행간 사이의 속사정을 헤아려 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한 편이다. 예컨대 이 시에 등장하는 "구장네 아줌마 둘"과 "구장"의 관계가 그렇다. "구장네 아줌마 둘"은 대체 어떤 사이일까? 그리고 "구장"은 왜 이 둘 사이의 싸움을 "산모롱이" 멀찍이서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구장네 아줌마 둘"은 비유컨대 "토매" 같은 사이이리라. 토매는 맷돌 모양의 농기구로 벼 껍질을 벗겨 현미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그렇듯 이 둘은 서로 "속을 긁"으면서도 싫으나 좋으나 꼭 부둥켜안고 살 수밖에 없는 관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를 이루고 있는 시어들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은 듯 보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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