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청론] 정부, 체육회에 영향력 행사 삼가야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하면 스포츠계의 성폭력이 사라지고, 체육인들의 인권이 향상될까?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달 22일 7차 권고안을 통해 체육회와 KOC의 분리를 제시했다. 지난 5월7일 성폭력 등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을 내세우며 출발한 혁신위 권고문의 최종판이다.

모두 28쪽에 이르는 7차 권고안에는 체육회에 대한 불만이 강하게 표출돼 있다. 반드시 하고 싶었던 말을 아껴두었다가 마지막에 꺼낸 느낌마저 든다. 혁신위는 "체육회가 연간 4000억원에 가까운 예산 대부분을 정부와 공공기금을 통해 지원받는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분야에서 발생해 온 중대한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 및 부조리 등에 대해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천선수촌을 포함한 스포츠 분야 전반의 폭력ㆍ성폭력 등 주요 인권침해 사례와 실태가 제기될 때마다 체육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인권침해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점 등에 대해 광범위한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내용을 근거로 체육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구성원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거나 회원종목단체, 시ㆍ도체육회에 대한 임원 인준권, 각종 규정 승인권 등을 통해 각 단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문제제기도 덧붙이면서 KOC와의 분리를 촉구했다.

이 내용을 절반만 믿는다고 가정해도 체육회는 당장 사라져야 할 집단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적어도 수십명이 형사처벌을 받거나 파면돼야 했다. 그러나 검찰을 비롯한 공권력에서 체육회의 문제를 다뤘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없다. 참으로 이상하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체육회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혁신위로부터 이처럼 수모에 가까운 비평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

혁신위의 주장대로 정부 예산을 쓰는 공공기관급인 체육회는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운영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정부가 혁신위를 통해 체육회와 대리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정치계의 누군가가 뒤에 숨어 체육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모든 체육행정을 체육회에 맡겼다. 군사정권이 이끌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체육회장을 맡았던 인물이 김운용, 김정길 등 정권의 실세였다. 이 때문에 체육 주무부처에서도 이들을 쥐락펴락할 수 없었다. 그러나 체육회장이 경선으로 선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김정행, 이기흥 등 과거보다 힘이 약한(?) 체육인들이 수장이 되면서 정부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체육 개혁은 필요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다. 체육회 내부 구성원(대의원)들의 충분한 논의를 통한 자발적 의사 없이 법 개정 또는 대리인을 통해 KOC 분리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은 향후 큰 문제를 불러 올 수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정치적ㆍ법적으로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는 2032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체육회는 내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 자랑스러운 조직이다. 힘을 합쳐도 모자란데 정부기구에서 KOC 분리를 내세우며 체육회를 모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혁신위가 설 자리는 없다.

성백유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대변인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종합편집부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