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가장자리/김소연

바로 오늘이다

라고 읊조리며 가느다란 눈매로 먼 데를 한참 보았을

사무라이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수평선이 눈앞에 있고

여기까지 왔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햇살에도 파도가 있다

소리는 없지만 철썩대고 있다

삭아 갈 것들이 조용하게 삭아 가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람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준비해 간 말들은 입술로부터 발생되지 않았다

식은땀이 되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머리통을 덮고 있던 머리카락의 가장자리가 젖어 갔을 때

눈앞에 있는

냅킨을 접었다

접고 다시 접었다

모서리에 모서리를 대고 또 접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 서 있는 걸까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다

기도하는 소리가 저 멀리서

스프링클러의 물방울처럼 번지고 있다

빛이 퍼지는 각도로 비둘기가 날고 있다

검은 연인이 그늘 속에서 어깨를 기대고 낮잠을 잔다

여긴 어디에요? 공손하게 질문을 던진다

바디랭귀지를 하니

춤을 추는 기분이 든다

다 왔구나 싶어진다 여기가 어디든 간에

■그래, 그럴 때가 있다. "이제 막 사람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하려던 말은 있었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다만 "식은땀"만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말았을 때, 그래서 "눈앞에 있는" 냅킨이나 "접고 다시 접"는 일밖엔 달리 할 일이 없었을 때가 말이다. 급기야 "내가 어쩌다 여기 서 있는 걸까" "오늘은 무슨 요일일까"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을 때, 그래서 "여기가 어디든 간에" "다 왔구나 싶어"질 때. "여긴 어디에요?"는 혼잣말이나 기도가 아니라 어쩌면 비명일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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