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고형렬

고성 북천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그 북천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 눈이 내려도찾아가지 않고 멀리서 살아간다아무리 비가 내려도 바다가 넘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나는 그 바다에게 편지 쓰지 않는다나는 그 북천과 바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더 이상멀어질 수 없을 때까지나와 북천과 바다는 만날 수 없다오늘도그 만날 수 없음에 대해 한없이 생각하며 길을 간다너무나 오래된 것들은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너무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는눈물이 나오려고 한다나의 영혼 속에 깊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고성 북천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길을 가다가도나는 몇 날 며칠 그 북천의 가을 물이 되어 흘러간다다섯 살 때의 바다로기억도 나지 않는 서른다섯 때의 아침 바다로다 말하지 못한 것들만 겨울처럼 앞에 나타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를 천천히 다시 읽어 보라는 권유 외에 달리 보탤 말이 없다. 이처럼 좋은 시는 그저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고성 북천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라는 꾸밈없는 문장은 너무나 절절해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나절 동안 괜히 되풀이해 생각한 것은 마지막 문장의 "겨울처럼"이라는 직유를 어떤 다른 말 예컨대 '쓸쓸하게'라거나 '적막하게' 따위로 옮겨 적으면 좋을까였는데, 그게 얼마나 쓸모없고 또한 시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인지만 깨달았을 뿐이다. 오늘 남은 한동안은 이 시에 적힌 "겨울처럼" 그렇게 앉아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헤아리고 싶다. 채상우 시인<ⓒ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