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저는 몇 년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픈데도 저는 수술동의서에 서명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법적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술동의서를 쓸 자격이 없는 겁니다. 제발 동반자법을 제정해주세요.”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A씨의 하소연이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A씨는 자신의 연인인 B씨와 동거 중이지만, B씨가 병원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동성 연인은 법적으로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이 법적 보호자를 둔 논쟁은 수 년 동안 지속돼 왔다. 보통 수술이나 시술 등에 대한 동의서는 본인에게 받는 것이 원칙이나 환자가 의식불명이거나 기타 동의를 얻기 어려운 경우에는 법적 보호자가 대신 동의서에 서명한다. 법률상 혼인관계 혹은 부모나 자녀, 손자 등 친족이 보호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실혼 관계의 동거인이나 가까운 친구, 가족만큼 가까운 관계의 어느 지인도 법적 보호자가 될 수는 없다.그런데 우리 사회에 가족형태가 다양해지면서 A씨와 같은 문제가 생기곤 한다. 혼인이나 혈연·입양 등의 관계로 정의되는 전통적인 가족은 줄어드는 반면, 사회·경제적 이유로 친구, 연인, 동성연인과 동거하는 인구가 늘면서 가족의 의미와 범위도 확대되고 있음에도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이런 이유로 ‘생활동반자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일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법적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고, 19일 오후 1시 기준 1280여 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지난 2014년 19대 국회에서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면서 동반자제도를 강조해 왔다. 현재 법률상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생활에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동반자’와의 법적인 관계를 인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성별에 관계없이 친족이 아닌 두 명의 성인이 실체적인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을 관할 기관에 신고하면, 원칙적으로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몇몇 유럽 국가에서는 이와 비슷한 법안을 시행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1999년 시민연대계약(PACS, 팍스)을 도입했다. 당시 프랑스는 혼인율이 지속 감소하고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율이 증가하면서 시대적 요구가 있었고, 정부는 이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기 위해 해당 제도를 도입했다. 2016년까지 19만2000쌍이 팍스를 맺었고, 해지율도 10%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독일도 2001년부터 ‘생활동반자법’으로 동거인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보호자 권리와 부양 의무, 채무 연대책임 등 배우자에 준하는 수준의 책임을 부여하는데, 해당 법안이 점점 발전하면서 현재는 승계입양 범위 내의 입양까지도 가능하다.동반자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시행하는 국가들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른 처사라는 우려도 있다. 일부 종교계에서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제정을 반대하고 있고, 특혜를 위한 위장신고를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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