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퍼스트맨'은 왜 '초승지구'를 가리키나

삼성그룹은 1994년 '세계 일류'를 표방했다. TV와 신문 광고에 이성적인 헤드카피를 내걸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바탕에는 닐 암스트롱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배치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국의 우주비행사다. 광고는 대중의 뇌리에 성공적으로 각인됐다. 지나친 경쟁의식을 조장하고 2등을 평가절하 한다는 비판이 일었으나, 대부분 실천 원리를 통한 절대적 개념으로 수렴했다. 암스트롱 또한 그렇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는 아폴로 11호에 함께 승선한 버즈 올드린과 경쟁하지 않았다. "달에 내린 첫 인물로 어떻게 당신이 선택되었나요?" "실제로는 우리 둘이었어요."데이미언 셔젤(33) 감독의 영화 '퍼스트맨'은 암스트롱을 미국의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가장일 뿐이다. 험난한 여정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다. 딸 카렌과 미국항공우주국(NASA) 동료들을 잇달아 잃어 마음마저 공허하다. 인류 최초의 지구 궤도상 우주선 도킹에 성공한 뒤도 다르지 않다. 빛나는 훈장도, 대중의 찬사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우주만큼 깊은 절망에 빠졌다. 달에 첫 발을 내딛고 한 말이 무색해질 정도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결국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다. 셔젤 감독은 암스트롱의 NASA 면접 신에 분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X-15 테스트 비행에서 대기권을 벗어났던데, 그곳에서 본 광경은 어떻습니까?"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시각은 달라집니다." 암스트롱의 서사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다. 우주시대를 알린 달 착륙은 미국과 소련의 뜨거운 경쟁에서 촉발됐다. 미국은 소련보다 한발 늦게 우주비행의 역사에 합류했다. 비군사적 단일기구로 NASA를 설립했고, 1인승 우주선의 지구 궤도 선행비행을 목표로 하는 머큐리 계획을 발족했다. 그러나 유인 우주비행에서도 소련에 선두를 내줘 체면을 구겼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의회에서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떠한 어려움도, 어떠한 비용도 감수할 것입니다."셔젤 감독은 당시 대중의 비판 여론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공을 들인다. 우주항공 산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을 반대하는 하원 의원들과 시민들이 대표적이다. 부담을 떠안은 NASA 직원들 사이에는 암스트롱도 있다. 막 동료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한 얼굴. 이어지는 달 탐사 준비 신에서 비극적인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달 착륙이 실패할 경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읽을 예정이었던 연설 원고가 흘러나온다. "평화적 탐사를 위해 달에 갔던 두 사람은 결국 달에 영면할 운명이었습니다. (중략) 어느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인류는 영원할 것입니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우주비행 또한 황홀한 여정과 거리가 멀다. 지극히 협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금방이라도 죽음과 맞닿을 것처럼 보인다. 핸드헬드와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에 생생한 효과음을 더해 보는 이를 폐소공포증에 빠뜨린다. J.G 발라드가 단편소설집 '우주 시대의 추억(Memories of the Space Age)'에 기술한대로 '방황하는 악몽'을 꾸며 미친 듯이 날아다닌다. 그의 단편소설 '재진입의 문제'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 계획은 모두 다 인류를 괴롭히는 어떤 무의식적 불안감의 징후이고, 특히 서구 기술 사회에서는 (중략) 잃어버린 캡슐 자체가 붕괴하는 거대한 환상의 파편이었다."인류 역사상 달을 밟은 사람들은 대부분 지구로 귀환한 뒤 어려움을 겪었다. 올드린은 몇 년 동안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빠져 지냈고, 앨런 빈은 일찌감치 우주 비행을 접고 화가가 됐다. 제임스 어윈은 NASA를 떠나 교회로 향했으며, 존 영은 챌린저호 폭발 사고 뒤 맹렬한 NASA 비판자로 돌변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인류는 하나라는 신비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의 우주 비행 뒤 이혼률이 높은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교수가 됐지만 세상으로부터 은둔했던 암스트롱 또한 불운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에 초승달 모양의 지구가 새겨진 것처럼 언제나 둥글게 보일 수는 없는 법이다.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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