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 전문가 '충분한 사전 검증, 사후 관리 필요' 일침
벤츠 구급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최근 들어 소방당국이 벤츠 구급차 등 엄청난 고가의 장비를 검증없이 구입했다가 일선 현장에선 전혀 활용하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선 소방관들은 몇 만 원짜리 화재진압용 장갑도 사비로 구입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처한 것과 대조되는 현실이다.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철저한 사전 검증ㆍ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9일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당국은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290여억원을 들여 대당 2억원짜리 벤츠 구급차 141대를 구입했지만 단 한 대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모두 폐차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당국은 해당 차량을 구입하면서 넓은 내부 공간에서 다양한 구급 행위를 할 수 있고 고가의 첨단 영상장비를 갖춰 화상진료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영상장비의 구동에 5분 이상 시간이 걸려 길어야 10분인 환자 이송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또 차체도 일반 구급차의 1.5배에 달해 불법 주정차가 심하고 좁은 골목길이 많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았다. 부품 값이 비싸 고장날 때마다 엄청난 정비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일선 소방서들은 벤츠 구급차들을 배정받은 후 주차장에 세워 놓은 채 거의 활용하지 못하다가 내구 연한(차령 5년 또는 12만km 이상 주행)이 되면서 차례로 폐차하고 말았다. 현재 대구 지역에 1대가 남아 있지만 폐차 대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2011년 이후부터는 국내 주행환경에 맞는 현대자동차의 스타렉스를 구급차로 구입하고 있으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때는 같은 현대차의 대형승합차 '쏠라티' 7대를 구입해 구급차로 활용할 계획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어서 2011년 이후에는 구입을 안 하고 있다"며 "2억원이라는 가격이 있지만 원격화상진료시스템 장착 때문에 가격이 오른 것이며, 요즘 구입하는 구급차도 1억1000만원 대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형소방헬기
이처럼 검증이 안 된 고가의 소방 장비를 마구잡이로 구입했다가 예산을 날린 사례는 더 있다. 소방당국은 화재 진압ㆍ응급구조 등 다목적용으로 대당 1000억원 안팎의 대형 소방헬기 2대를 2008년과 2016년 각각 구입했다. 하지만 2008년 구입한 솔개 1호의 경우 응급구조장비를 떼 내고 물대포ㆍ물탱크를 장착하는 데 5시간이 걸려 긴급한 화재 사고 발생시 투입할 수 없다. 솔개 2호는 아예 구매 과정에서 예산 누락으로 물탱크ㆍ물대포를 구입하지 않아 화재 진압용으로는 쓸 수가 없다. 이러자 소방청은 최근 960억원대 대형헬기 2대를 더 구입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33억원을 들여 투입한 '소방로봇'도 잦은 고장 등으로 인해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2011년 28억여원을 들여 소방로봇 58대를 구입했지만 자체 펌프 기능이 없어 소방차 없이는 현장 활동이 불가능한 바람에 출동 실적이 전혀 없었다. 이에 5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소방펌프를 갖춘 소방로봇 2대를 개발, 현장에 투입했지만 잦은 고장과 하자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사용을 꺼리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다. 실제 해당 로봇 2대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무선조작과 방수포, 배터리, 메인스위치 등 2년간 총 16차례나 수리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각 지역 소방당국이 대당 200만~500만원대씩 주고 무더기로 구입한 '드론'들도 창고 신세다.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따르면 시 소방재난본부가 2015년부터 대테러ㆍ재난구조 등에 투입한다며 드론 71대를 구입했지만 전담인력 부족ㆍ잦은 고장 등으로 활용 건수가 41건에 불과하다. 반면 추락 등 16회의 고장으로 수리비만 10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이에 대해 한 응급구조 전문가는 "어떤 구조 장비ㆍ인력을 확충할 때에는 충분한 시범 운영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에 근거해서 차근 차근 진행해야 한다"며 "덮어 놓고 예산을 투입해 장비ㆍ인력을 구입해 놓고선 쓸모 없어졌다고 창고에서 썩히는 것은 전형적인 세금 낭비로 도덕적 해이와 업자와의 결탁, 부정부패까지 연결될 수 있다. 철저한 사전 검증ㆍ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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