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가슴 아프게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전축을 사면 제일 먼저 남진이 부른 '가슴 아프게'를 들어야지."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말했다. 1987년 5월 30일이거나 그 뒤 며칠 사이 일이다.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핑클론 토머스란 선수를 KO로 이기고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할 무렵이므로. 당시 정 선생은 '샘터'라는 곳에서 일했다. 지금 그는 대표적인 불교작가이자 기행문학의 대가로서 명성이 높지만 당시에는 눈부신 단편을 잇달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는 젊은 소설가였다. 정 선생은 출판ㆍ편집인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가 편집장을 맡은 월간 '불교사상'은 1980년대에 보기 드물 정도로 세련된 매체였다. 샘터에서는 출판부장을 맡아 감각적인 편집을 해보였다. 물건을 고를 때 까다롭고 원두커피와 작설차를 즐기는 정 선생이 '트로트'를 듣겠다고 해서 의아했다. 그는 "남진이 '가슴 아프게' 하나는 완벽하게 불러 버린다"고 전라도 억양으로 말하며 짓궂게 웃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인지하는 신체기관은 나의 눈이고 나의 귀며 그녀를 놓쳐버린 나의 손이다. 그리고 나는 뇌를 사용해서 이별이라는 정보를 확인하고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왜 가슴이 아플까?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산탄드레아 인 페르쿠시나에 있는 산장에서 마키아벨리의 흔적을 더듬는다. 거기서 세상과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떨어져나간 마키아벨리의 불운을 동정한다. 그런데 그녀는 저 멀리 피렌체 대성당의 둥근 지붕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예리한 칼날 같은 것에 콱 찔리는 듯한 육체적 아픔'을 느꼈다고 적었다. 영혼의 서식지는 오랫동안 심장이었다. 특히 서양에서는 심장을 중요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이 뇌를 영혼의 서식처로 본 플라톤적 전통을 압도했다.(칼 지머, '영혼의 해부')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미라로 만들 때 뇌를 제거하고 심장을 보존했다. 그런데, 과학이 정신을 해부하는 세기에도 심장은 살아남는다. 그래서 남진은 연락선을 타고 떠나는 '당신'을 바라보며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아프다.심장은 어떻게 가슴, 곧 감정의 질그릇이 되었을까. 토머스 윌리스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는' 뇌의 아이러니에 대해 말했다. 뇌가 품은 가능성의 크기를 인간은 모른다. 현대 과학이 많은 부분을 밝혔지만 미지의 영역이 더 많다. 알파고는 이세돌과 커제를 이겼다. 하지만 알파고가 돌을 거두면서 쾌감을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알파고에 업로드할까. 가슴은 정서를 전염시키는 강력한 숙주다. 공감은 가슴에서 비롯되기에 위대한 일치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인간은 그의 정서를 확대하여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재주를 피우기도 한다. 그래서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 메어 운다.' 500년 시간을 거슬러와 시오노 나나미의 가슴을 찌른다. 화순에 있는 소설가의 집에는 명품 오디오가 있다. 지난번에 갔을 때 남진의 음반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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