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에 대해 열흘만에 입장을 발표한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와 '오리발'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북한 조선법률가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 공화국 공민이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갑자기 쇼크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한 것은 뜻밖의 불상사"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눈여겨 봐야할 점은 김정남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약 3500자 분량의 담화에 '김정남'이라는 이름을 한 차례도 쓰지 않은 채 '공화국 공민'이라고만 지칭했다. 이는 내부적으로 김정남의 존재는 물론 사건 자체를 알리지 않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없는 중앙통신에는 담화를 싣고 대내용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는 싣지 않은 점도 같은 맥락에서다. 북한의 담화발표 시점도 절묘하다. 전날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북한 외교관이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결국 북한 당국이 개입된 '국가 범죄' 혐의가 짙어지자 강경 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히 말레이시아 경찰이 직접 마카오에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 시신 확인 및 인도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이상 수사진행을 방관할 수 없다는 의중도 담겨진 것으로 풀이된다.최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김정남이 김정은의 이복형이란 사실과 암살 사실을 공개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수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담화를 발표한 것은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라는 점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과거에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고 앞으로 남조선에 의한 날조를 언급하면서 테러사실을 전면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남한의 공작으로 김정남 피살 사건이 발생했다는 '물타기 전략'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수사결과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오리발 전략까지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최대한 시간을 끌어 김정남 암살 사건을 '영구미제' 사건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이날 담화에서 "우리는 이미 이번 사건의 정확한 해명을 위한 공동수사를 제기하고 우리 법률가대표단을 파견할 준비가 되여있다"고 밝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북한은 과거에도 북한의 소행임이 뻔한 대형 테러 사건이 벌어졌을 때마다 한동안 침묵하다 증거가 하나둘 나오면 부인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과 1987년 KAL기 폭파사건이 대표적이다.한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궤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정부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조사에서 드러난 정황만 보더라도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게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에도 "북한의 용의자, 북한 국적자들의 행적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배후는 북한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확실시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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