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척도/산드라 비어즐리

모든 것은 카피바라를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작거나 카피바라보다 크다.모든 것은 카피바라보다 키가 크거나 키가 작다.모든 것은 종종 카피바라보다더 브라질 댄스에 열광하거나 덜 열광한다고 오해받는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수박을 더 먹거나 덜 먹는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나무껍질을 더 먹거나 덜 먹는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더 짖거나 덜 짖는다.카피바라는 휘파람 소리를 내고 혀를 차고 꿀꿀거리고알람 같은 소리를 내지르기도 한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더 놀라거나 덜 놀란다.카피바라는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기 때문에언제나 내리막길을 가는 듯 느낀다.모든 사람은 카피바라보다 초원에 더 익숙하거나 그렇지 않다.(후략) 
■ 재미있는 시다. 우선 '카피바라'에 대해 짧게 소개하자면, 남미에 사는 대형 설치류로 보통은 육지에서 생활하지만 수영과 잠수도 잘하며, 다 자라면 그 크기가 1m 혹은 그 이상인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카피바라(Capybara)'는 원래 남미 인디오 말로 '초원의 지배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친화력이 대단해 근래엔 우리나라에서도 애완동물로 키운다고 하는데, 그래도 아직까진 낯선 동물이긴 하다. 이 시가 재미있는 까닭은 물론 깜찍한 발상 때문이다. 좀 생소하긴 하지만 여하튼 어떤 동물이 사람을 포함해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분류하고 판단하고 평가해 왔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산드라 비어즐리는 그런 인간중심주의를 단 한 편의 시로 단숨에 그리고 유쾌하게 역전시킨다. 이렇게 번안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바둑이보다 눈을 덜 좋아하거나 더 좋아한다' 혹은 '모든 사람은 황소개구리보다 크게 울거나 그렇지 않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동물에서 더 나아가 식물 그리고 무생물, 좀 더 나아가 삼선 슬리퍼와 같은 사물을 척도로 삼아 세계와 인간을 측정하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의 원제는 "Unit of Measure"다. 그리고 이 시를 쓴 산드라 비어즐리(Sandra Beasley, 1980-)는 미국의 젊은 시인이자 논픽션 작가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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