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감사결과 공개 사항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국가기관과 공공기관 등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감사원이 최근 감사 기근에 빠졌다. 보통 한 주에 2~3건의 감사결과를 발표하던 감사원은 올해 초부터 진행된 감사결과가 발표되는 여름을 기점으로 감사건수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주 감사원은 공보계획 등을 통해 감사 결과 발표가 없을 것이라고 공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감사원.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가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연간 감사 건수를 확인한 결과 감사원은 연평균 157건의 감사결과가 발표됐다. 연초부터 8월31일까지 발표되는 감사건수는 평균 114건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연초부터 8월31일까지 발표된 감사건수는 94건에 불과했다. 최근 9년 사이에 감사건수가 올해(8월31일기준)보다 적었던 때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87건)을 제외하면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감사원은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 등에 대대적인 감사인력을 투입했었다.감사원 내부에서도 예년에 비해 감사 건수가 20% 정도 줄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실제 감사건수 확인에서 이같은 지적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한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정권 초창기냐 후반기냐에 따라 감사건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권 초 의욕적으로 공직기강 확립과 정권 기틀 마련 등의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감사가 진행되지만 정권 후반이 될수록 감사건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1년차 때 201건의 감사가 진행된 이후 2년차부터 정권말까지 꾸준히 150건대의 감사가 진행됐던 점을 감안하면, 정권 초기냐 후기냐에 따라 감사건수가 달라진다는 설명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감사원 내부 구성원의 변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완수 감사원 사무총장 취임 이후 감사건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감사원 내부출신이 아닌 검찰출신인 이 사무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 당시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 사무총장은 정권 실세였던 최경환 당시 부총리(현 새누리당 의원)의 대구고등학교 후배라는 점과 경북 영덕 출신으로 TK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제기됐다. 현정권 임기 말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주요 사정기관에 한 곳인 감사원에 이 사무총장을 배치됐다는 것이다. 감사원 소관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다년간 있었던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사무총장 임명당시 "검찰공화국의 감사원 TK검찰사무총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이 사무총장을 둘러싸고 제기된 비판의 핵심은 '부작위의 작위'다. 감사원의 경우에는 통상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정부와 정권이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패러독스(역설)가 존재한다. 현대판 암행어사인 감사원이 '어사출두'를 외치며 대대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그만큼 일을 잘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 된다. 정권 초에 감사가 활발하다 정권 말에 가면 감사원 활동이 둔해진다는 감사원 고위관계자의 설명은, 정부 입장에서 봤을 때 열심히 일하는 감사원에 대한 불편함을 피력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권 초 감사원의 활약은 전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지만, 정권 말로 갈수록 감사원이 활약을 펼친다는 것은 현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총장 이후 감사원이 부작위의 작위, 즉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현정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감사 건수가 줄어들었던 것은 이같은 우려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의미있는 감사 자체가 줄면서 초급 감사관들이 업무능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 마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일 손놓고 있다보면 역량 자체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감사원 내부 사정 등에 정통한 인사는 "이 사무총장 체제 이후 감사원이 외부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만 하면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나서는 혁신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이대로 가게 되면 감사원 본연의 역할과 기능은 수 년 내에 숨죽이듯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감사원이라는 헌법기관의 합의체적 성격과 원활한 내부조직 운영을 위해 외부인사의 영입, 그중에서도 검찰 출신의 사무총장 임명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는 점은 누차 지적되어오던 사항"이라고 언급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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