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비가 와― / 최승자

   비가 와― 삼천포에 비가 와― (사과나무에서 사과 한 알이 떨어질 때 바람은 왜 살짝 멈추는 걸까?)  비가 와― 삼천포에 비가 와― 삼천포에서 구룡포까지는 아주 먼 시간 (없는 코스모스들이 왜 늘 마음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비가 와― 삼천포에 비가 와― 삼천포에서 모슬포까지는 아주 먼 시간 (그 무슨 메아리들이 왜 아주아주 멀리서 들리는 걸까?)  비가 와― 삼천포에 비가 와― 카페 창가를 다 적시고 있네 넋 없이 많은 인생들을 다 적시고 있네  
  '삼천포로 빠지다'라는 말이 있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어긋나는 경우'에 주로 쓰는 부정적 의미의 표현으로, 대개 그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한편에 안고 있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냥 삼천포로 슬쩍 빠지고 싶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은 특히 그렇다. 어느 "카페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참 오래도 오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곧 떨어지겠지, 저 사람은 우산도 없이 비를 홀딱 맞고 서 있네, 코스모스는 이 빗속에서 참 춥겠다…… 그러면서 "아주 먼 시간" 동안 마음이 흘러온 대로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삼천포'는 이제는 사라진 지명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도 괜찮겠다 싶다. 마음의 출처는 지금 여기에 없는 그 어디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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