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후르츠 캔디 버스/박상수

후르츠 캔디 버스/박상수당신과 버스에 오른다텅 빈 버스의 출렁임을 따라 창은 열리고3월의 벌써 익은 햇빛이 전해 오던구름의 모양, 바람의 온도당신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타인이어서낯선 정류장의 문이 열릴 때마다 눈빛을 건네 보지만가로수와 가로수의 배웅 사이 내가 남기고 가는 건닿지 않는 속삭임들뿐하여 보았을까 한참 버스를 쫓아오다공기 속으로 스며드는하얀 꽃가루, 다음엔 오후 두 시의 햇빛,그사이에 잠깐 당신한 번도 그리워해 본 적 없는 당신내 입술 밖으로 잠시 불러 보는데그때마다 버스는 자꾸만 흔들려 들썩이고투둑투둑 아직 얼어 있던 땅속이바퀴에 눌리고 이리저리 터져 물러지는 소리무슨 힘일까당신은 홀린 듯 닫힌 가방을 열고오래 감추어 둔 둥글고 단단한 캔디 상자를 꺼내네내 손바닥 위에 캔디를 올려놓을 때떠오르던 의문과 돌아봄, 망설임까지어느덧 그것들이 단맛에 녹아 버스 안을 채워 나갈 때오래전에 알았던 당신과 나, 단단한 세상은 여전하지만시작도 끝도 없고 윤곽마저 불투명하던 당신에게아주 잠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이 순간.
■삼월이었나 보다. 사뿐사뿐 봄이 오고 있는 어느 따사로운 삼월의 오후 두 시였나 보다. 그리고 아마도 변두리 정류장에서였나 보다. 당신을 만난 건, 아니 당신을 문득 처음 보게 된 건. 참 끌리는 당신. 당신과 나는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탔고. 탔는데 타고 보니 이게 웬일이람! 버스 안엔 당신과 나뿐. 당신에게 말을 걸고는 싶지만 당신과 나는 오늘 처음 본 "타인"이라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내 입안의 말들은 당신에게 "닿지 않는 속삭임들"로 머뭇거리다 말 뿐인데. 그런데 놀라워라. "당신은 홀린 듯 닫힌 가방을 열고" 내게 후르츠 캔디 하나를 건네는 게 아닌가. 두근두근, 콩닥콩닥, 알쏭달쏭. 뭐지? 대체 뭐지?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은 터질 것 같은데, 그러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 캔디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들고. 어쩌면 당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그리고 또한 어쩌면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내가 당신에게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달콤한 생각이 드는 "이 순간"! 와아! 심쿵!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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