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윤회/박판식

  고대 범어에서 윤회는 수레바퀴를 뜻했다 선선에서 윤회란 목숨을 빚진 사람은 반드시 다음 생에라도 목숨을 구해 준 이에게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이었다 중국의 연나라에서는 연꽃 속에서 영원히 몸 섞는 연인이라는 뜻이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거란의 한 떠돌이 부족에게는 그녀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찾으러 나선다라는 뜻이었다 유마경에 나오는 향기의 나라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라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든, 기원전 그리스의 한 상인이 서역을 지나간 적이 있다 그의 목적지는 윤회였다 불꽃과 얼음의 거대한 산을 넘어 먼지의 집들을 지나, 그는 서역의 한 작은 오아시스로 만들어진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적어도 그가 다섯 번은 태어나기도 전의 사람들이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태껏 아무런 빚도 지지 않고 살아왔다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다섯 번을 태어나는 동안 네 번의 죽음에 빚을 지고 있었군요" 침착해라 변하지 않는 형상이란 없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렇게 조급하게 굴 필요는 없어 어디로 가든 결국 네가 만나는 것은 바로 너니까  
 '윤회(輪回)'란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해 삼계육도(三界六道)의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않고 돌고 돈다는 뜻이다. 참 아득하고 고통스러운 단어다. 그리고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어떤 필연을 느끼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까닭은 기억나지 않는 저 멀고 먼 전생들 가운데 어느 오후의 지극히 사소한 스침 하나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마 맺어지지 못하고 통곡하듯 헤어진 이번 생의 아쉬운 인연은 다음 혹은 그다음 생에 벚나무와 그 나무 아래 무심히 잠든 고양이로 만나 잠시 다정한 꿈을 나눌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래서 시인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고 적었나 보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이라는 이 찰나 속에는 '영원'이 저 태산의 계곡들처럼 겹겹이 겹쳐 있고 또 다른 영원들이 무궁하게 피어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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